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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3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작성자   김윤홍  회원정보 쪽지
작성일   2018-03-13 오후 2:52:56  번 호   3061 
조 회   7  추천수   0 
2018년 3월 13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제1독서 에제 47,1-9.12

그 무렵 천사가 1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2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 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3 그 사람이 동쪽으로 나가는데, 그의 손에는 줄자가 들려 있었다. 그가 천 암마를 재고서는 나에게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발목까지 찼다. 4 그가 또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무릎까지 찼다. 그가 다시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허리까지 찼다. 5 그가 또 천 암마를 재었는데, 그곳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있었다. 물이 불어서, 헤엄을 치기 전에는 건널 수 없었다.
6 그는 나에게 “사람의 아들아, 잘 보았느냐?” 하고서는, 나를 데리고 강가로 돌아갔다. 7 그가 나를 데리고 돌아갈 때에 보니, 강가 이쪽저쪽으로 수많은 나무가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복음 요한 5,1-16

1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2 예루살렘의 ‘양 문’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3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6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7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9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10 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11 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그들이 물었다. “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한 사람이 누구요?” 13 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곳에 군중이 몰려 있어 예수님께서 몰래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다. 14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15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16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요즘에 정말로 바쁩니다. 계속된 강의와 써야 할 원고가 많아서 피곤한 날들을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제는 저녁식사를 하고 난 뒤에 잠깐만 누워 있으려고 했는데, 그대로 오늘 새벽까지 쭉 잠들고 말았습니다. 피곤하기는 했나 봅니다. 바쁘고 피곤하다보니 며칠 전에 동창신부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았지요.

“너무 할 일이 많다. 묵상집도 써야 하고, 방송 원고도 써야하고, 신문에 글도 써야 해. 여기에 강의가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네. 한가하게 살아야 하는데 왜 이렇게 바쁘지?”

그러자 동창신부는 “조금 여유 있게 좀 살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이렇게 말하네요.

“그런데 내가 하지 말라고 해도 너는 계속해서 그렇게 살겠지 뭐.”

맞습니다. 동창신부에게 푸념을 하고는 있지만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하기 싫어서 했던 말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냥 바쁜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여기서 가져야 할 생각과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 올바를까요? 기쁘게 제가 해야 할 것들을 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고, 또 그런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을 해봐야 그 무엇도 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사는 듯 바빠 보이는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감사할 일이 아닐까요?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 자신의 가치가 높다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러한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힘들다고만 하면 많은 일을 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아서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냥 푸념하면서 불평불만 속에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즐기면서 적극적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지, 슬퍼하고 좌절하면서 수동적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벳자타 못가에서 서른여덟 해 동안 앓아누워 있던 병자를 고시고서는 “건강해지고 싶으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런데 병자의 대답이 조금 이상합니다. “건강해지고 싶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이 벳자타 연못에는 물이 출렁거릴 때 제일 먼저 연못 속에 들어가면 병이 치유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연못만을 바라보면서 언제 물이 출렁거리는 지를 보고 있지요. 문제는 이 병자는 혼자라서 제일 먼저 물속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연못에 들어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병의 치유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건강해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사실은 잊어버리고 단순히 연못 속에 들어가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 병자처럼 중요한 사실은 보지 못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에만 온 힘을 쏟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중요한 것을 바라보고 이를 위해 온 힘을 쏟는 지혜로운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사는 영혼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레프 톨스토이).


벳자타 연못터라고 예상하는 곳입니다.


넓어지는 원(라이너 마리아 릴케)

넓은 원을 그리며 나는 살아가네
그 원은 세상 속에서 점점 넓어져 가네
나는 아마도 마지막 원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 일에 내 온 존재를 바친다네.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나가면서 원이 넓어지는 사람과 좁아지는 사람입니다. 타인이 들어올 수 없는 옹색한 원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무한한 수용으로 하느님까지도 그 원 안에 들어오도록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어떤 원을 그립니까?


갑곶성지에서 첫미사를 봉헌해주신 11분의 새신부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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