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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복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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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8일 연중 제23주일
작성자   김윤홍  회원정보 쪽지
작성일   2019-09-08 오전 7:39:49  번 호   3604 
조 회   8  추천수   0 
2019년 9월 8일 연중 제23주일

제1독서 지혜 9,13-18

13 어떠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14 죽어야 할 인간의 생각은 보잘것없고, 저희의 속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15 썩어 없어질 육신이 영혼을 무겁게 하고 흙으로 된 이 천막이 시름겨운 정신을 짓누릅니다.
16 저희는 세상 것도 거의 짐작하지 못하고 손에 닿는 것조차 거의 찾아내지 못하는데 하늘의 것을 밝혀낸 자 어디 있겠습니까?
17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18 그러나 그렇게 해 주셨기에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2독서 필레 9ㄴ-10.12-17

사랑하는 그대여, 9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 데다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 10 이러한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12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13 그를 내 곁에 두어, 복음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대 대신에 나를 시중들게 할 생각도 있었지만, 14 그대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선행이 강요가 아니라 자의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15 그가 잠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6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형제라면, 그대에게는 인간적으로 보나 주님 안에서 보나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17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


복음 루카 14,25-33

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가구를 만드는 목공소에서 환영하는 나무는 어떤 것일까요? 아무래도 가구를 만들기에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어떤 굴곡 없이 쭉쭉 뻗어있는 나무일 것입니다. 여기에 단단하기까지 하다면 최고의 나무로 반기겠지요. 그런데 키도 작고 뚱뚱하고 모양도 뒤틀린 나무가 있습니다. 휘어지고 뒤틀려서 볼품없는 나무로 사람들의 철저한 외면만 받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나무는 전 세계에서 가장 공명이 잘 된다는 명품 바이올린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이렇게 볼품없어 보이는 형태가 된 이유는 이 나무가 자라는 로키산맥의 지형 때문입니다. 로키산맥의 해발 3,000~3,500m 지점은 바람이 매섭고 눈보라가 심하며 강수량도 아주 적습니다. 생명체가 제대로 살 수 업는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다 보니 키가 작은 볼품없이 휘어진 나무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을 이겨낸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귀한 나무가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과 시련 등의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귀한 나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주님께서는 가만히 계시지 않으시고 직접 갚아주십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들다면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악과 타협을 하면서 주님으로부터 멀어져서도 안 됩니다.

탑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탑을 세우려는 사람은 먼저 그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계산합니다.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면 사람들이 비웃을 테니까요. 우리는 주님을 선택하면서 영광스럽고 흠 없는 삶을 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탑의 기초만 놓은 채 포기하는 사람처럼,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전쟁을 준비하는 임금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우리에게는 적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를 외적으로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더 많은 적은 재물욕, 쾌락에 대한 욕망, 이기심, 남을 쉽게 판단하는 닫힌 마음 등 우리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적군을 나 혼자의 힘으로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꼼꼼히 따져보면 승리를 위해 당연히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매우 당황스러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했던 히브리어나 아람어의 경우에는 비교급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더욱더’ 등의 비교급 대신 사용했던 말이 ‘미워하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습니까?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당신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첫째 자리에 놓고 살아야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첫째 자리에 놓고서 살아갈 때, 자신의 십자가를 무겁게 느끼지 않고 기쁘게 짊어질 수 있습니다.
세상에 제일 좋은 나무는 없습니다. 각자의 쓰임새가 있을 뿐이죠(이정섭 목수).



주님을 첫번째 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편 되어주기.

종종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를 몰라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처음 사제서품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어떻게 상담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저 들어주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최대한 많이 들어주려고 했지만, 이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충동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십시오. 누군가에게 어려운 상황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그 사람이 “나의 경우는 이러했었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식으로 말했을 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상대방 이야기에 공감을 해주면서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했을 때 정말로 큰 도움이 됩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특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 줘야 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는 것입니다. 나에 관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이지만, 상대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상대가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이 사실만 기억하면 분명히 상대방의 진정한 편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웃의 편이 되어주는 모습을 주님께서 먼저 모범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따라서 이웃의 편이 되어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주님을 제대로 따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편이 되어주십시오.



주님 편에 서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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