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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4일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작성자   김윤홍  회원정보 쪽지
작성일   2020-04-04 오전 6:59:55  번 호   3814 
조 회   7  추천수   0 
2020년 4월 4일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제1독서 에제 37,21ㄴ-28

2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나가 사는 민족들 사이에서 그들을 데려오고, 그들을 사방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22 그들을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산악 지방에서 한 민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그들 모두의 임금이 되게 하겠다. 그리하여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23 그리고 그들이 다시는 자기들의 우상들과 혐오스러운 것들과 온갖 죄악으로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모든 배신에서 내가 그들을 구원하여 정결하게 해 주고 나면,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24 나의 종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임금으로서, 그들 모두를 위한 유일한 목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내 법규들을 따르고 내 규정들을 준수하여 지키면서, 25 내가 나의 종 야곱에게 준 땅, 너희 조상들이 살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들만이 아니라 자자손손이 영원히 그곳에서 살며, 나의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제후가 될 것이다.
26 나는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으리니, 그것이 그들과 맺는 영원한 계약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그들을 불어나게 하며, 나의 성전을 영원히 그들 가운데에 두겠다. 27 이렇게 나의 거처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28 나의 성전이 그들 한가운데에 영원히 있게 되면, 그제야 민족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복음 요한 11,45-56

그때에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46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47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4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51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52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5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55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56 그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성전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어느 남자 목욕탕 탈의실에 갑자기 많은 사람이 우르르 몰려와 여기저기에서 저마다 옷을 갈아입는 번잡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옷장과 바닥에는 많은 사람의 옷가지와 소지품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지요. 그런데 그 소지품들 사이에서 휴대전화 하나가 계속 울립니다. 하지만 휴대전화 주인이 듣지 못했는지, 아무도 받지 않고 계속 울릴 뿐이었습니다.

잠시 뒤, 어느 남자가 급하게 전화를 받습니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휴대전화가 밖으로 크게 들렸는데, 이런 대화였습니다.

“아빠! 나 게임기 사도 돼? 저번에 사준다고 했잖아.”

“그래, 사.”

“아빠! 스마트폰도 바꾸고 싶은데 사도 돼?”

“알았어. 그렇게 해.”

사람들은 당연히 아빠와 아들의 대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끊은 이 남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합니다.

“이 휴대전화 주인 누구세요?”

주인도 아니면서 전화 속의 아이와 이렇게 말해도 되는 것일까요? 그런데 지금을 사는 우리도 그렇게 보입니다. 즉, 세상의 주인도 아니면서, 주인인 척 살고 있습니다.

라자로가 되살아난 뒤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도 많았지만, 여전히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의심하는 사람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 의심의 첫 번째 이유는 시샘입니다. 예수님 전에는 온전히 백성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었지요. 그 사랑과 존경이 이제 예수님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의심의 두 번째 의심은 불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자주 찾아가 표징을 요구하기도 하고,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들이 지키는 율법에 대한 새로운 계명인 사랑을 내놓으면서, 이들을 향해 위선자라면서 꾸짖기도 하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은 로마로부터의 공격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로마 체제 안에서 유지되는 자기들 나라의 한시적 권한과 성전에 의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이 예수님 주위에 모이면 모일수록 로마는 반역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지금까지 부분적으로나마 가지고 있는 자유를 모두 잃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주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했던 모습은 스스로가 주인인 척했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주님을 세상의 관점으로 바라봐서는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의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면 과정에서 이미 행복하다(법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시기도 막바지에 들어섰습니다.


기억해주는 사람.

사실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을 만날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서로 사는 지역이 다르고, 하는 일도 달라서 아주 친한 친구 외에는 볼 일이 거의 없습니다.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의 아버님 부고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부모님 장례에는 가봐야겠다 싶어서 장례식장을 홀로 찾아갔습니다.

문상하고 친구와 정말 오랜만에 인사를 나눴습니다. 거의 25년 만에 만난 것 같습니다. 친구는 “고맙다”라고 말한 뒤에, “진짜 오랜만에 보네. 너 살아 있었구나.”라고 합니다. 하긴 천주교 신자가 아니니 신부로 사는 제 소식을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친구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서 제 번호를 가르쳐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휴대전화에 제 이름과 전화번호가 주소록에 이미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고등학생 때 우리 집 전화번호였지만, 큰 감동이었습니다.

30년도 훨씬 전인 우리 집 전화번호, 당연히 연락이 안 되니 지울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친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말합니다.

“이름이라도 보면 옛날 생각나잖아.”

기억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짐을 해 봅니다. 나 역시 누군가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이지요.



주님 무덤 성당에서의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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