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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8일 성주간 수요일
작성자   김윤홍  회원정보 쪽지
작성일   2020-04-08 오전 6:05:46  번 호   3818 
조 회   12  추천수   0 
2020년 4월 8일 성주간 수요일

제1독서 이사 50,4-9ㄴ

4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5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9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복음 마태 26,14-24

14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15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16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17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하십니다.’ 하여라.”
1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0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21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5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지금 하는 일에 대한 후회가 밀려들 때가 있습니다. 즉,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를 말합니다. 이런 상태에 있을 때 어떻게 스스로를 바라봅니까?

한심하다고 자신을 자책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잘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 생각만 하고 있다면 아무런 변화가 있을 수 없고, 그냥 사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면 할 일이 떠올려지지 않습니까? ‘이러고 있으면 안 되니 지금 할 일은 무엇인가?’라면서 지금 해야 할 일의 숫자를 늘려줍니다. 그 순간 내 인생은 바뀌게 됩니다.

신학교에 처음 들어가서, 외출도 할 수 없는 기숙사 생활을 하며 자유를 억압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첫 방학이 되자마자 자유를 만끽하면서 사는 데 집중했습니다. 기도도 하지 않고, 대신 친구와 만나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이렇게 며칠을 놀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그 뒤 다시 신학생답게 살 수 있었습니다. 기도와 묵상을 하면서 마음의 평화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을 자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스스로 변화를 하고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생각이 사라지는 순간, 시간만 보내면서 그냥 사는 것이 되고 맙니다.

유다의 배신을 봅니다. 그는 세상의 물질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관심이 예수님을 은돈 서른 닢에 팔아넘기는 행동으로 넘어갑니다. 팔아넘길 생각을 했을 때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라고 생각했다면 어떠했을까요? 또 예수님께서 그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시려고 이름을 밝히지 않고 당신을 팔아넘길 사람이 있음을 말씀하셨을 때,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라고 생각했다면 어떠했을까요? 회개하지 않자 그 배신자가 유다임을 나와 함께 빵을 적시는 자라고 말씀하셨을 때,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라고 생각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유다는 그러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특히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존경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호칭의 변화에서부터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물을 때, 유다만이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묻습니다.

주님의 뜻과 멀어지는 마음이 들었을 때,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더 마음이 쏠리게 될 때, 자기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주님을 배반하는 마음도 되돌릴 수 있습니다.


시간은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이다(테오프라스토스).



저는 아니겠지요?


복잡해지는 삶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도 ‘젊은 신부’라는 호칭이 제게 맞는 호칭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호칭을 전혀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긴 신학생 때 할아버지 신부님이라고 생각되었던 은경축(서품 25년)을 맞이한 당시 신부님의 나이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 어떤 사람도 제게 ‘젊은 신부’라고 하지 못하겠구나 싶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덜컥 겁이 납니다. 어느 책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매년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고, 매일 조금씩 삶은 복잡해져 간다.”

나이를 먹으며 경험을 내세우며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는 꼰대처럼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나이를 먹어도 주님의 일보다는 내 일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리석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요? 할 수 있었던 일도 게으름과 안일함으로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요? 삶이 더욱 복잡해져 갑니다.

‘인생에서 너무 늦었을 때란 없습니다’라는 책을 쓴 모지스 할머니를 떠올려 봅니다. 그녀는 76세가 되어서야 처음 그림을 그렸고 그후 20년 넘게 1,600여 점의 작품을 났습니다. 또, 90세에도 현역 모델을 하는 카르멘 델로피체도,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왕성히 활동하시는 박막례 할머니도 후회의 삶보다는 지금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가를 보여 주십니다.

삶은 점점 복잡해집니다. 그런데 이것을 풀어나가면 존경과 사랑을 받고, 풀기를 포기하고 화만 내고 있다면 꼰대가 될 뿐입니다.



최후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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