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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7주간 화요일]영원한 생명(요한17,1-11)
작성자   김종업  회원정보 쪽지
작성일   2018-05-15 오전 6:24:58  번 호   1675 
조 회   4  추천수   0 


[부활 7주간 화요일]영원한 생명(요한17,1-11)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자신은 달릴 길을 다 달리고 성령에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사도 20,17-27)
그 무렵 17 바오로는 밀레토스에서 에페소로 사람을 보내어  그 교회의 원로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18 그들이 자기에게 오자 바오로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여러분과 함께  그 모든 시간을 어떻게 지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19 나는 유다인들의 음모로 여러 시련을 겪고 눈물을 흘리며  아주 겸손히 주님을 섬겼습니다.
20 그리고 유익한 것이면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회중 앞에서  또 개인 집에서 여러분에게 알려 주고 가르쳤습니다.
21 나는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오고  우리 주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증언하였습니다.
22 그런데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23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가 가는 고을에서마다 일러 주셨습니다.
24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25 이제, 내가 두루 돌아다니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한 여러분 가운데에서  아무도 다시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26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 그 누구의 멸망에 대해서도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엄숙히 선언합니다.
27 내가 하느님의 모든 뜻을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여러분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셨다고 기도하신다. (요한17,1-11ㄴ)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1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2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4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5 아버지,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제가 아버지 앞에서 누리던 그 영광으로, 이제 다시 아버지 앞에서 저를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6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뽑으시어 저에게 주신 이 사람들에게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7 이제 이들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8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을 제가 이들에게 주고, 이들은 또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제가 아버지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참으로 알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9 저는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10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은 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통하여 제가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11 저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지만 이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유다인들에게 호소하는 사도 성 바오로



 

부활 제7주간 화요일 제1독서 (사도20,17-27)

 

"그런데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가 가는 고을에서마다 일러 주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22~24)


사도행전 20장 22절부터 27절까지는 에페소 교회를 위한 사도 바오로의 고별 설교의 두번째 부분으로서 사도 바오로 자신이 장차 받게 될 투옥과 환난에 대한 현재의 마음 상태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 '사로잡혀'로 번역된 '데데메노스'(dedemenos)의 원형 '데오'(deo)'묶다', '속박하다'는 뜻으로 육체적인 매임 뿐만 아니라 영적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루카13,16) 본문에서는 수동태 완료 분사로 쓰였다.

 

성령께서 예루살렘에서 있을 사도 바오로의 환난을 예고하시면서(23절; 사도21,11),  동시에 사도 바오로로 하여금 그 길을 당당하게 가게 하신 것이다. 

사도 바오로가 성령의 강력한 이끌림에 따르긴 하였지만, 그 자신도 그 길을 가고자 열망했다는 말이다. 

그의 최고의 목표는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면서까지도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24절; 사도21,11).

그의 마음에는 예루살렘을 넘어 로마 그리고 스페인까지 가고자하는 원대한 비전이 타오르고 있었다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성령께서~' 

사도 바오로의 미래에 대한 성령의 증거는 투옥과 환난으로 요약된다. 

'투옥'으로 번역된 '데스마'(desma)의 원형 '데스몬'(desmon)'띠', '끈'이라는 뜻으로 쇠사슬이나 끈으로 속박당한 상태, 결박을 상징한다.  

또한 '환난'으로 번역된 '틀립세이스'(thlipseis)의 원형 '틀립시스'(thlipsis)'압박', '궁핍', '곤고'란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겪으셨던 고난이나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반드시 받게 될 고난을 가리키는 때 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절에서 투옥과 환난은 문자 그대로 사도 바오로가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나아갈 때, 앞으로 경험하게 될 감옥 생활과 그로 말미암은 극심한 고난가리킨다 



사도 바오로는 예루살렘에서 자신이 고난받을 것에 대한 성령의 예언적 경고를 여러 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는 자신의 계획을 전혀 수정하지 않았다. 

사도 바오로에게 있어서 주요 관심사는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사명, 즉 복음 증거의 사명을 힘써 완수하는 것이지, 어떻게 고난없이 쉽게 봉사할 것인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댓가도 지불하기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특히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 번역되 '메누신'(menusin)의 원형 '메노'(meno)'머무르다', '떠나지 않다', '지속적으로 소멸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쓰여 사도 바오로가 만나게 될 투옥과 환난을 단순히 일회적으로 경험하게 될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될 사건임을 나타낸다. 

이러한 고난이 자신에게 임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이 완수해야 할 사명을 위해 그 길을 거부하지 않았던 사도 바오로의 태도는 마치 십자가의 고통을 바라보시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루카9,51). 

하느님의 봉사자로 자처하는 자들은 고난의 십자가를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고난의 십자가를 짐으로써 교회가 유익하고 많은 생명을 구원할 수 있다면, 사도 바오로와 같은 결단을 기꺼이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본절은 고난과 환난이 자신 앞에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굳건히 걸어가겠다는 사도 바오로의 강한 사명 의식을 집약적으로 나타낸 구절이다. 

여기서 '달릴 길' 번역된 '드로몬'(dromon)의 원형 '드로모스'(dromos)'노정'으로 직역되며, '인생의 노정'이나 '직무의 노정'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에서 '달릴 길'사도 바오로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왔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사명자로서의 노정을 가리킨다.

사도 바오로의 '달릴 길'이란 궁극적으로 성령께서 자신의 마음속에 심어 준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자의 길이며, 구체적으로는 예루살렘과 로마와 스페인을 향해 가고 있는 길이다. 



한편 우리는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표현을 통해 사도 바오로 자신이 받은 사명이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란 사실에 매우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음알 수 있다. 

사도 바오로의 이러한 자긍심은  확실한 사명감으로 연결되어 그의 복음 전파의 기초가 되어 있다.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서신에서 항상 자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또는 사도라는 사실을 분명히 강조하며 밝히는데, 자신의 사명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은 사명임을 나타내는 본절의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표현 역시, 사도 바오로가 서신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강조하는 표현들과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직무'로 번역된 '디아코니안'(diakonian)의 원형 '디아코니아'(diahonia)'직분'(ministry), '사명'이라는 뜻이며, 특히 다른 사람을 섬기는 직분을 가리킨다.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복음을 통해 다른 사람을 섬기도록, 하느님으로부터 부름받았다는 분명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 


사도 바오로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분명한 사명은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었다. 즉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정한 복음을 한마디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요약해서 표현했다. 

'은총'에 해당하는 '카리토스'(charitos)의 원형 '카리스'(charis)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자가 받게 되는 하느님의 호의를 가리킨다.  

하느님은 죄로 말미암아 지옥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우리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으로써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갖게 해 주셨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얻게된 이러한 죄사함의 은총과 영생은 돈으로 살 수도 없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우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렇듯 소중한 죄사함의 은총과 영생을 우리에게 거저 주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거룩하고 보배로운 구속 성혈의 공로를 믿고 회개하면, 누구나 누리게 되고 소유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인 것이다. 그리고 이 은총이 우리에게 임하였다는 기쁜 소식이 바로 '복음'이다. 

'복음'에 해당하는 '유앙겔리온'(euanggelion)'좋다'라는 뜻의 부사 '유'(eu)'말', '소식'을 가리키는 '앙겔리아'(anggelia)의 합성어로서, '좋은 소식', 기쁜 소식'(good news)이란 문자적 의미를 지닌다.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여기서 '마칠 수만 있다면'으로 번역된 '호스 텔레이오사이'(hos teleiosai)'마치기 위해서'라는 목적의 뜻을 나타낸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 곧 하느님의 은총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도 바오로는 복음을 증거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생명조차도 기꺼이 내놓기로 각오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결단과 각오는 사도 바오로의 다른 서신들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갈라2,20; 필리1,20; 3,7~9





 

 부활 제7주간 화요일 복음(요한17,1~11ㄴ)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3)


'영원한 생명'(영생)이라고 번역된 '헤 아이오니오스 조에'(he aionios zoe; eternal life)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인데, 여기에 대해 분명히 밝혀 주시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유일하신 참하느님과 그분께서 세상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이라고 정의를 내리신다.

'곧~~아는 것'으로 번역된 '히나 기노스코신'(hina ginoskosin; that they might know)은 현재 시제 가정법으로 '계속해서 알아야 하는 것'이란 뜻인데, 이 동사가 나타내는 '앎'은 단순한 지적인 인식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영적인 친교를 말하며, 성부와 성자께서 사랑 가운데서 서로을 아시는 것처럼 우리가 그 하느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성부 하느님과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하느님을 하느님답게 흠숭하고 존중해 드리며, 그분의 뜻에 자발적인 순종을 하기 위해 힘쓰며, 예수 그리스도를 성부 하느님께서 세우신 구원자시요, 중재자시며 임금으로 알아 영혼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예수님의 존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온전히 드리게 된다. 

성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앎'이 바로 이와 같기에 이러한 '앎'이 바로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10,30)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지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요한 5,11~12)


우리는 요한 복음 17장 3절에서 '기노스코신'(ginoskosin)이란 단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희랍어의 현재 시제는 일회성(단회성)이 아니라 계속성(영구적 지속성)을 하므로, 결코 그 앎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계속해서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는 매일 가까이 다가가고 추구해야 할 대상이고, 안 만큼 사랑해야 할 대상이며,몸으로 살아야 할 대상으로서의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가장 중심과 마음의 중심에 끊임없이 모시는 것을 말한다.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길 빕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에페3,16~19) 


나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알고 사랑하고 닮으려고 애쓰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생명의 말씀을 가까이 대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 성체조배와 영성체를 하는 것을 말하며, 희생과 봉사, 고통을 봉헌하며 자선의 애덕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과 정신, 운명과 가치관을 온전히 내 것으로 삼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아실현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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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은 통교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성체조배나 묵주기도, 9일기도, 15기도, 자비의 기도, 십자가의 길 등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가끔 9일기도를 하면 소망을 꼭 들어주신다고 하는데 그렇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기도 하고 기도하는 만큼 주님과의 일치를 이룬다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삶의 변화나 주님과의 사랑의 일치를 이루지 못한 채 기도문만 외운다고 그렇게 이루어지겠습니까? 횟수나 형식에 매이지 말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그 기도가 지향하는 바대로 삶의 쇄신을 이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시기에 앞서 당신자신과 제자들, 그리고 앞으로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하신 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권한을 통해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주신 이들과 앞으로 당신을 믿게 될 이들을 위하여 기도함에 있어서 밑바닥에 깔려 있는 기본핵심은 사랑의 일치에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제자들, 그리고 제자들의 증언을 통하여 믿게 되는 이들, 바로 우리와의 사랑의 관계를 완성하길 바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하늘과 땅의 권한을 받았기에 믿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빵과(요한6,32이하) 생명의 물(요한4,10이하)을 주시며 풍부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란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요, 안다는 것은 결국 통교(通交)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겉모양을 아는 것이 아니라 깊은 일치에서 나오는 앎이요, 알기 때문에 삶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한 몸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주님과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주님은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온전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사랑하면서 사랑의 친교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기도는 “심장과 심장의 만남”이라고 하였습니다. 작업시간에는 일로써, 기도시간에는 기도로써 우리는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기도를 말, 생각, 장소, 시간에 국한시키지 말고 그 한계를 넘어서서 언제 어디서든지 현존하시는 주님과 친교를 나누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항상 기도할 수 있습니다.

 부디 삶이 기도이기를 갈망합니다. 사랑으로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행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웃을 향해 열려있기를 소망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반영억라파엘신부



오늘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께 기도하십니다. 당시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상태셨습니까? 죽음을 앞둔 상태셨지요. 처절한 죽음이 닥쳐오리라는 것을 알게 되면, 누구라도 그 죽음을 피하려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그 죽음을 받아들이시면서도, 자신보다는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드리시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죽음을 앞두고 갈등이 심하셨지만, 이를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승화시키셨지요.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오늘 예수님께서 드린 기도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지요. 먼저, 다가오는 엄청난 시련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따름으로써, 당신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도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도록 청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위기에 처하신 예수님의 기도 전부입니다. 자신은 모두 잊어버리고, 당신을 따르던 이들을 위해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어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 것이 아닙니까? 아울러 우리도 이 지상 삶을 마치고 부활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를 초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 내용을 묵상하며 이를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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