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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7주간 수요일]진리(요한17,11-19)
작성자   김종업  회원정보 쪽지
작성일   2018-05-16 오전 4:55:52  번 호   1676 
조 회   16  추천수   0 


[부활 7주간 수요일]진리(요한17,11-19)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교회 원로들에게 모든 양 떼를 잘 보살피라고 당부하고 떠난다.(사도 20,28-38)
그 무렵 바오로가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말하였다.
28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 떼의 감독으로 세우시어, 하느님의 교회 곧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29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  양 떼를 해칠 것임을 나는 압니다.
30 바로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진리를 왜곡하는 말을 하며  자기를 따르라고 제자들을 꾀어내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31 그러니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물로 타이른 것을 명심하며  늘 깨어 있으십시오.
32 이제 나는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굳건히 세울 수 있고, 또 거룩하게 된 모든 이와 함께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여러분에게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33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34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35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애써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친히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36 바오로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무릎을 꿇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37 그들은 모두 흐느껴 울면서 바오로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38 다시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오로의 말에  마음이 매우 아팠던 것이다. 그들은 바오로를 배 안까지 배웅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하나가 되게 해 주시고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아버지께 기도하신다.(요한17,11ㄷ-19)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11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12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13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14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5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16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17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18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도20,28-38)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애써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친히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33~35)


사도행전 20장 33절에서 35절까지의 이르는 고별 설교 말미에서 사도 바오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 변호하면서 남에게 주는 삶이 복됨을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깨우치고자 한다.

당시 사도 바오로를 비방하던 자들의 비방 중 하나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거둔 구제(자선)헌금 중 일부를 사도 바오로가 자신을 위해서 유용했다는 것이었다(2코린12,17).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분명히 에페소에서 자신의 직업, 천막 만드는 일을 통해 자신의 필요를 충당했음을 밝혔다(사도18,3; 1코린4,12; 1테살2,9).


사도 바오로는 낮에는 천막만드는 일에 종사하였고, 다른 사람이 쉬는 시간에는 티란노스(두란노; 개신교에서는 이렇게 부름)학원에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쳤던 것이다(사도20,31; 사도19,9.10).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복음의 일꾼으로서 경제적 필요를 자신의 양떼들로부터 채움받을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권리마저 포기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소유를 탐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에페튀메사'(ephethimesa)의 원형 '에피튀메오'(ephithimeo)금지된 것을 '갈망하다','탐내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과거의 일회적 사건을 뜻하는 부정(不定; indefinit)과거형으로 사용되어 과거에 단 한번도 다른 사람의 소유를 탐내 본 적이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은','금','옷'으로 일반적 재물의 종류를 나열하며 자신이 그 어떤 것 하나도 탐내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주어진 환경에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모든 욕심과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었다(1티모6,5~10).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본절에서 자비(自費)로 자신의 필요를 채웠을 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의 필요도 채웠다는 사실을 회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여러분 자신이'에 해당하며 주어를 강조할 경우에 사용하는 재귀 대명사 '아우토이'(autoi)를 문장 서두에 쓴 것은, 이 말을 듣고 있는 에페소 교회 원로들이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 두 손으로' 해당하는 '하이 케이레스 하우타이'(hai cheires hautai)주격으로 사용되어 사도 바오로 자신이 직접 노동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 뿐만 아니라 테살로니카나 코린토에서도 자신 및 자신의 동료들을 위해 육체 노동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1코린4,12).

 

여기서 '장만하였다'로 번역된 '휘페레테산'(hypheretesan)원형 '휘페레테오'(hyphereteo)는 일차적으로 선박의 맨 아래층에서 '노를 젓다'는 뜻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비유적으로 '섬기다','봉사하다'는 뜻으로 자주 사용된다(사도13,36; 24,23). 당시 선박의 맨 아래층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은 노예들이었다. 

따라서 사도 바오로가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자신을 철저하게 하느님의 종으로 여겼음을 잘 보여준다. 

즉 사도 바오로는 배 맨 아래층에서 배의 진행을 위해 수고하는 지극히 비천한 노예처럼 자신도 선교 여행의 진행을 위해 필요한 재정을 자신이 스스로 섬기는 자세로 감당했다는 뜻이다.

사도 바오로는 자비로 복음 전파 활동을 감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의 진행을 위해 필요한 물질들을 기쁨으로 봉헌하며 섬겼던 것이다.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친히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본절에서 자신의 삶을 에페소 원로들이 본받아야 할 모델로 다시 한 번 더 자신있게 소개하고 있다. 

'휘페데익사'(hypdediksa)의 원형 '휘포데익뉘미'(hypodeiknimi)는  '눈앞에서 직접 보여 주다', '실물 교육을 하다'는 뜻이다.

 

사도행전 20장 33절과 34절의 사도 바오로의 행동은 에페소 원로들이 지난 3년간 친히 그들의 두 눈으로 목격하였다.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 원로들에게 물질에 대한 탐욕없이 동료와 교회의 필요를 채우고,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던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한다. 

사도 바오로의 삶은 자신과 함께 일한 동역자들에게 본으로 제시될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하느님의 비밀인 복음을 깨달은 사도 바오로는 그들에게 입으로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직접 삶으로 가르쳤던 것이다. 하느님의 봉사자들은 말씀을 입으로만 전할 것이 아니라 늘 자신의 행동과 삶으로 가르쳐야 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사도 바오로는 본문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친히 주신 말씀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물질관의 원리가 되는 말씀이며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이 말씀을 에페소 원로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이 말씀은 복음서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많은 학자들은 이것이 구전(口傳)되어 오는 예수님의 말씀이거나 사도 바오로가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으로서 사도 바오로가 간직해오다가 에페소 원로들에게 들려 준 것으로 본다.

 

당시 속담 중에 '받을 때에는 손을 내밀고, 줄 때에는 주먹을 쥐는 짓을 해서는 안된다' 비슷한 말이 있다. 

이것은 받기를 좋아하면서 주기는 싫어하는 탐욕스러운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격언이었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당시의 속담 대신에 자신이 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말씀으로 에페소 원로들을 권면한 것이다.


'바오로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무릎을 꿇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였다'(36) 

사도행전 20장 36절부터 38절까지는 사도 바오로가 고별 설교를 마친 뒤 원로들과 이별하는 장면이다.

루카는 사도 바오로와 에페소 원로들의 이별을 세 단계로 묘사했다.  첫째 그들은 함께 기도했고(36절) 둘째는 이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다 울었으며(37절) 마지막으로 배에 까지 사도 바오로를 전송했다.(38절) 

이러한 이별은 사도 바오로에 대한 원로들의 사랑과 염려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아시아 교회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사랑과 염려를 보여준다(38절). 

본절에서는 사도 바오로가 고별 설교를 마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한 내용이 나온다.

'theis ta gonata autu ~ proseyiksato' (테이스 타 고나타 아우투~프로세익사토; he knelt down~and prayed )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당시 일반적인 기도의 모습은 아니었다. 많은 유다인들은 손을 하늘을 향해 들고 기도했다. 

그러나 초대 교회에서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이 새로운 기도의 모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고(루카22,41) 스테파노가 순교할 때 마지막 기도를 무릎을 꿇고 했으며(사도7,60),  사도 베드로가 죽은 타미타를 살릴 때 간절히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사도9,40).

 

이렇듯 신약성경에서 무릎을 꿇고 드리는 기도는 아주 어려운 곤경을 만났을 때 드리는 간절한 기도의 문맥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여기서 사도 바오로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는 것은 앞으로 당할 교회의 어려움들의 무게를 생각하고 그들과 맺을 사랑의 끈을 놓으려 할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슬픔을 간절한 기도로 하느님께 아뢰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비록 몸은 서로 떠나 있지만 기도를 통해 영적으로 친교를 지속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도 바오로의 마음이 잘 느껴진다.




 부활 제7주간 수요일 복음(요한17,11ㄷ~19)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11)


요한 복음 17장 11절의 기도에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떠난 뒤 세상에 남게 될 사랑하시는 제자들을 향한 당신의 특별한 관심이 잘 드러난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부활, 승천하심으로써 예전처럼 제자들과 함께 육체로 머무시며 그들을 지켜주실 수 없기 때문에, 성부 하느님께 그들에 대한 보호를 요청하시는 기도이다. 특히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이 하나가 되도록 그들의 보호를 요청하시는 기도이다.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히나'(hina; that) 가정법으로서 '~하도록'(so as to; so that~may)이라는 목적의 의미를 나타내는데,  제자들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이들이 하나되어야 하는 목적 때문이다.

여기서 '지키시어'로 번역된 '테레손'(tereson; keep; protect)은  '굳게 붙잡다', '보살피다'는 뜻을 지니는 '테레오'(tereo)부정(不定) 과거 명령으로서 굳게 붙잡아 완전하게 지켜 달라는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안전하게 지키는 수단이  예수님께 주신 '하느님의 이름'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이름'은 좁게는 '하느님의 능력'을 의미하는데(시편20,20; 54,3; 잠언18,10),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성부 하느님께서 당신께 주신 하느님의 능력으로 제자들을 보호해 오셨지만, 이제 그 일을 성부 하느님께 직접 의탁하시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이름'은 넓게는 '하느님의 완전하신 신적 위격'을 의미하는데, 천주 성부의 신적 위격 하느님의 능력과 더불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가르치시는 교훈과 지식을 포함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성부 하느님께 그런 보호를 요청하신 궁극적인 목적이들의 하나됨을 위해서이다.

여기서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에 해당하는 '히나 오신 헨 카토스 헤메이스'(hina osin hen kahos hemeis; so that they may be one as we are one)에서 '히나 오신 헨'(hina osin hen)'이들이 계속해서 하나가 되도록'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불일치와 불화를 염려하셨다는 것이 분명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서 '하나됨'모델은 예수님과 아버지 하느님 사이의 하나됨이다.  예수님과 아버지 하느님의 뜻과 목적이 하나인 것처럼(요한10,30; 14,9~11), 제자들도 한 뜻과 한 목적을 가지고 일치하기를 원하신 것이다(요한17,21.23).

'하나됨'으로써 이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악한 세상에서도 능력있게 이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요한13,34.35)과 아버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사실(요한17,21)를 세상에 증거하게 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 모두는 한 사람한 사람이 그 몸의 지체들이다(1코린12,27). 서로 떨어질 수 없도록 잘 결합되고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몸과 마찬가지로, 교회도 유기적인 조직체이다(에페4,16).

따라서 크든 작든 분열과 분쟁을 일으킬만한 소지들을 철저히 없애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6월 8일 복음말씀[부활 제7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세상에 발을 붙이고 있는데 천국을 살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그게 말하는 것같이 쉬운지 아십니까? 정말 어렵습니다. 신부님은 자꾸 하늘을 보라고 하시는데 하늘을 보니 제가 땅에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땅에 있으니 땅의 처지대로 살아야겠습니다. 저도 먹고 살아야지 어찌합니까! 그래도 하느님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실 테니까요!

 

주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진리 안에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곧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사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곧 진리이십니다. 길이신 예수님을 따라 걸으면 진리인 말씀을 발견하고 깨닫게 되며 결국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면 세상이 그를 미워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어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빛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빛으로 나아가는 길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요한1,5).

그러므로 두려워 마십시오. 지금 당장 힘에 겹더라도 반드시 빛의 진가는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갑니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요한3,21).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2,4). 그리고 육화를 통하여 인간이 되신 진리인(요한14,6)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이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인정받는 사람으로, 부끄러울 것 없이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일꾼으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2티모2,15). 사실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1요한2,3-4) .

 

우리가 비록 땅에 발을 붙이고 있지만 진리를 거슬러 살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 험해지면 험해질수록,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믿는 이들이 진리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은 남의 탓이 아니라 내가 빛나는 삶을 살지 못한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속하지 않으신 주님의 뒤를 이어 세상에 있으면서도 이미 천상을 사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어둠을 탓합니다. 믿는 이들이 제대로 살지 못한다고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모순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나만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못 마땅한 것이 보이면 보일수록 더 많이 사랑하고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마음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련의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와 깊은 일치를 이루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온전히 순명하셨습니다. 그 그리스도의 거룩함으로 인해 제자들이 거룩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과의 일치 안에서 거룩함을 잃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혹 죄에 떨어졌다면 주님의 거룩함에 온전히 맡겨드려 다시 거룩함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복음의 기도는 하나가 되게 하소서. 악에서 지켜 주소서. 진리로 거룩하게 하소서로 요약 됩니다. 그 기도가 풍성하게 열매 맺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2년 5월 23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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