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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8주간 토요일]간질병 (마태 17,14ㄴ-20)
작성자   김종업  회원정보 쪽지
작성일   2018-08-11 오전 7:40:25  번 호   1755 
조 회   3  추천수   0 

[연중 제18주간 토요일]간질병 (마태 17,14ㄴ-20)



주님께서는 하바쿡 예언자에게, 뻔뻔스러운 자의 정신은 바르지 않으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고 하신다. (하바 1,12─2,4)
12 주님, 당신은 옛날부터  불멸하시는 저의 하느님, 저의 거룩하신 분이 아니셨습니까? 주님, 당신께서는 심판하시려고 그를 내세우셨습니다. 바위시여, 당신께서는 벌하시려고 그를 세우셨습니다.
13 당신께서는 눈이 맑으시어 악을 보아 넘기지 못하시고  잘못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시면서  어찌하여 배신자들을 바라보고만 계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이를 집어삼켜도 잠자코 계십니까?
14 당신께서는 사람을 바다의 물고기처럼 만드시고  우두머리 없이 기어 다니는 것처럼 만드셨습니다.
15 그는 사람들을 모두 낚시로 낚아 올리고  그물로 끌어 올리며 좽이로 모으고 나서는  기뻐 날뛰며

16 자기 그물에다 제물을 바치고 좽이에다 분향을 합니다. 그것들 덕분에 그의 몫이 기름지고 음식이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17 이렇게 그가 줄곧 그물을 비워 대고 민족들을 무자비하게 죽여도 됩니까?
2,1 나는 내 초소에 서서, 성벽 위에 자리 잡고서 살펴보리라. 그분께서 나에게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내 하소연에 어떻게 대답하시는지 보리라.
2 주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셨다. “ 너는 환시를 기록하여라. 누구나 막힘없이 읽어 갈 수 있도록 판에다 분명하게 써라.”
3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4 보라, 뻔뻔스러운 자를. 그의 정신은 바르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를 한탄하시며 마귀 들린 아이를 고쳐 주신다. (마태 17,14ㄴ-20)
그때에 14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15 말하였다. “주님, 제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자주 물속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16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가 보았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18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시자 아이에게서 마귀가 나갔다. 바로 그 시간에 아이가 나았다.
19 그때에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다가와,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바쿡 예언자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제1독서(하바1,12~2,4)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2,3.4ㄷ)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3)


앞선 2장 2절에서 하느님께서는 답변으로 주시는 것을 판에 기록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제 본문에서는 판에 기록된 내용 '환시'(hazon)라 표현하며, 이 환시는 당장 이루어질 것이 아닌 정해진 때,이루어질 시기가 따로 정해져 있음 밝힌다.


여기서 '정해진 때'에 해당하는 '모에드'(moed)는 시간과 장소에 모두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본문에서는 시간과 관련해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특히 선민 이스라엘이 매년 정기적으로 지키는 '절기'(레위23,2) 내지는 규칙적으로 돌아오는 '계절'(창세1,14)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환시'가 이루어질 때는 '정해진 때'(모에드)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한 것은 겨울이 가면 봄이 반드시 돌아오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하바쿡 예언자에게 판에 기록하라고 말씀하신 종말론적 심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본문 후반부에서는 이 '정해진 때'를 다시 '끝'(종말)이라고 표현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케츠'(qets)하느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사람의 죽음(창세6,13)이나 악한 행위에 대한 심판을 받을 날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에제7,3).


본문은 후자의 의미가 더 강한 것으로서 심판으로 인한 형벌 자체보다는 심판이 이루어지는 날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본문은 여기서 심판의 날이 '~을 향해 치닫는'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해당하는 '웨야페아흐'(weyapeah)의 원형 '푸아흐'(puah)기본적으로 '숨을 급하게 내쉬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종말의 때가 아직 이르지는 않았지만, 그 때가 임박하였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종말이 마치 누군가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종착지를 향하여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는 것처럼 긴박하게 닥쳐오고 있음을 묘사한 것이다.


한편, 본문이 말하는 종말의 때가 구체적으로 역사의 어느 시점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첫째, 바빌론 군대의 침공으로 말미암은 남부 유다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선민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된 바빌론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선민 뿐만 아니라 바빌론도 선민에 대해 지나치게 잔인한 폭력을 행사했고,  하느님께 대한 교만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대했던 온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종말론적 심판으로 인해 모든 나라들이 무너지고, 하느님의 온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때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남부 유다 위정자들의 백성들에 대한, 또는 백성들 상호간에 행해지는 불의와 폭력에 대한 하바쿡 예언자의 고발을 기록하는 1장 2~4절의 내용을 고려하면, 이것은 남부 유다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후에 바빌론 여러 나라들에 대한 불의와 폭력, 잔인함, 교만을 고발하는 하바쿡서 1장 12~17절의 내용을 고려하면, 바빌론의 종말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본문의 종말은 남부 유다나 바빌론 어느 한 나라에 대한 종말만을 의미하는 것이라기 보다 이 모든 것을 포괄함과 동시에, 궁극적으로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로운 하느님의 나라를 가져오는 종말론적 심판의 때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본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때를 다윗 임금이 통치할 때의 영광을 재현하는 정치적인 회복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했지만, 신구약 성경이 말하는 '종말'은 문맥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며, 그 모든 것들은 궁극적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 그리고 그의 재림과 심판을 통해 도래할 세상의 종말로 귀결되는 것이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본문은 종말이 반드시 올 것이며, 그 때가 더디지만 지체되지는 않을 것임을 내용으로 한다.


여기서 '늦어지는 듯하더라도'(더디다)하는 것은 '어떤 움직임이나 일에 걸리는 시간이 오래다'는 의미이고, '지체하다'라는 단어는 '때를 늦추거나 질질 끈다'는 의미이다.


즉 본문은 종말의 때가 느끼는 사람에 따라 금방 오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종말의 날 자체가 연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종말의 때에 대한 인간의 판단은 더딘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이미 하느님께서 확정하신 것으로 결코 바뀌거나 연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본문의 주어가 새 성경에서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원문으로 보면 '늦어지는 듯하더라도'에 해당하는 '이트마하마흐'(ythmahamah)'지체하지'에 해당하는 '예아헤르'(yeaher)남성 3인칭 단수 주격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거의 모든 영역본들은 '그것'(it)이라는 주어를 번역에 포함시킨다.


그런데 본절의 내용을 인용하는 신약 성경에서는 이 주체를 인격으로 보아서 본절이 단지 종말이 임할 것이라는 내용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재림하실 것을 예표하는 내용으로 본다.


먼저 히브리서 10장 37절"조금만 더 있으면 올 이가 오리라. 지체하지 않으리라."는 내용은 본문을 인용하면서도 종말의 때보다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드러낸다.


이것을 감안하면, 본문은 일차적으로는 범죄한 선민 이스라엘의 멸망, 그리고 선민 이스라엘을 멸하고 압제한 바빌론과 같은 나라를 멸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장차 메시아 즉 구원자이시요 심판자로 오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택한 백성들이 온전히 구원에 이르고, 하느님을 부인하는 세상의 모든 권세들이 멸망하며, 온전한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궁극적인 측면의 종말의 날이 도래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4)


본절 상반절에 기록된 하느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악인은 교만하고, 하느님 대전에 합당하지 않은 자 언급되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구원의 대상이 되는 의인의 면모를 묘사한다.

여기서 제시되는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자이다.

 



그런데 본문의 '성실함'(믿음)에 해당하는 '에무나'(emunah)거짓이 없고, 진실하시고, 불의가 없으시며, 의로우시고 올곧으신(의인들의 참된 의지가 되시는) 하느님의 신실성을 묘사하는 표현이기도 하다(신명32,4).


그리고 이 단어가 사람에게 적용되면, 일차적으로 진실하신 하느님을 향한 강한 신뢰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하느님을 향한 사람의 태도와 면모를 묘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타인들에게 신실하며 진실한 태도를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잠언12,22).


사실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사람들에게도 신실하며 진실한 태도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문의 '성실함'(믿음)이라는 표현은 하느님께 대한 강한 신뢰를 의미할 뿐 아니라, 하느님 보시기에 의로운 삶을 살려고 애쓰며, 타인들에게도 결코 속임이나 거짓을 행치 않는 진실한 면모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본문은 의인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이웃에 대한 신실함과 진실한 태도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의 선언은 당시 신흥 제국인 바빌론이 고대 근동의 강자로 떠오르면서 남부 유다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을 무너뜨리는 상황 속에서 많은 이들이 극한 고통을 겪으며 절망 속에서 살아갈 것이지만, 오직 하느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진 자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 때를 기다리며 하느님을 굳게 신뢰하고 믿음을 근거한 신실한 삶, 진실한 삶을 살 것이란 의미를 내포한다.


이같은 메세지는 당시 남부 유다 백성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동시에 우상을 섬기고,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면서 동시에 이웃의 것을 약탈하는 이중적 삶을 살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고, 변화된 삶을 살 것을 촉구하는 의미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즉 본문은 선민 이스라엘을 향해 바빌론의 불의와 폭력, 약탈 속에서도 하느님의 참된 백성으로 구원에 이르고자 한다면, 의롭고 신실한 하느님의 백성으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복음(마태17,14ㄴ~20)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20)


마태오 복음 10장 1절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오 복음 17장 15-16절에는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는 아이를 제자들이 고치지 못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간질병'이라는 단어로 번역된 '셀레니아제타이'(seleniazetai; he is lunatic)원형 '셀레니아조마이'(seleniazomai)'달'(마태24,29)이라는 뜻을 가진 '셀레네'(selene)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인들달과 악령에 사로잡히는 것을 결부시켜 수시로 상태가 변하는 간질과 같은 병이나 미친 것처럼 발광하는 증상이 이름을 붙였다. 간질이라는 것은 발작적으로 경련하며 의식 상실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뇌 질환을 말한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 17장 15절에서 이 아이가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고생하고'에 해당하는 '파스케이'(paschei; vexed)원형 '파스코' (pascho)견딜 수 없는 가혹한 고통으로 말미암아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커다란 해를 입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마르코 복음루카 복음의 병행 구절은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 주는데, 그 아이는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말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으며,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경련이 일어나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몹시 고통당한 탓에 이미 몸도 많이 상해 있었다(마르코9,17.18; 루카9,38.39).


이런 간질병에 걸린 아이를 주님의 제자들이 고쳐 주지 못해 일어난 사건이 오늘 복음에 실려 있다.


이 사건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은 전적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믿음의 여하에 따라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믿음이 약한'에 해당하는 '올리고피스티안'(oligopistian; unbelief; so little faith)원형 '올리고피스토스'(oligopistos)'작은'(야고3,5)이라는 뜻을 가진 '올리고스'(oligos)'믿음'(요한20,27)이라는 뜻을 가진 '피스티스'(pistis)가 결합한 합성어로서, 믿음이 전혀 없는 불신앙을 말하지 않고, '연약한 믿음', '적은 믿음'을 가리킨다.


여기서 제자들이 가진 믿음은 예수님을 참으로 의지하는 온전한 믿음이 아니고, 연약한 피상적인 믿음이었음을 나타낸다.


이 구절과 병행하는 마르코 복음 9장 29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만을 요구하셨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는, 기도의 삶과 거기에 동반하는 믿음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갈 것이다.'


본문은 제자들의 부족한 믿음을 표현하기 위한 과장법적 표현이다. 당시 제자들은 과거 선교 여행 중에 행한 구마사건만을 기억하고, 하느님의 능력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의지했던 것 같다.


믿음이 겨자씨만큼 작을지라도, 그것이 살아있고 온전한 믿음이라면 분명히 놀랄만한 큰 권능을 행할 수 있다.


제자들이 병을 고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믿음에 생명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산을 옮긴다'는 표현은 불가능한 것을 행하는 것에 대한 격언적 표현이다. 어떠한 문제라도 생명력있는 믿음만을 소유한다면, 능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조차도 해결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마르9,23).


루카 복음 17장 6절에서는 좀 더 강한 과장법이 사용되어,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돌무화과나무에게 나무가 심길 수 없는 바다에 심겨라고 명령할 때 조차도, 돌무화과나무가 그것을 수행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겨자'에 해당하는 희랍어 '시나피'(sinapi)'브라시카 니그라' (Brasssica nigra)로 추정되는 식물이다. 이것은 팔레스티나에 많이 자라는 식물로서, 그 씨는 겨우 눈에 보일 정도로 매우 작으나, 3m이상 높이까지 자랄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겨자씨'하느님 나라의 급속한 확장을 나타내는 비유에 사용되었다(마태13,31).






2017년 8월 12일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믿음>


마귀를 쫓아내지 못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묻자(마태 17,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20)."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신 일을 마귀 쪽에서 생각하면,

마귀들이 예수님을 두려워해서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한 일입니다.

제자들이 마귀를 쫓아내지 못한 것은

마귀가 제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마귀들은 믿음 없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이라는 말은

"크든지 작든지 간에 믿음이 있기만 하다면"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로 앞에,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글자 그대로만 보면

약하기는 해도 제자들에게 믿음이 있다는 뜻이 되는데,

'약한 믿음'과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은 어떻게 다를까?

예수님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보면,

'믿음이 약한 상태'는 사실상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도 없는 상태'입니다.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라고 말했던

'어떤 가나안 여자'의 경우,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여자를 칭찬하셨습니다(마태 15,27-28).


그 여자의 믿음은 얼마나 컸을까?

제자들은 겨자씨 한 알도 안 되는, 사실상 믿음이 없는 상태이고,

가나안 여자는 믿음이 크다고 칭찬을 받고...

제자들과 그 여자의 믿음은 어떻게, 얼마나 다를까?


제자들은 사도로 뽑힐 때 이미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받았고(마태 10,1),

마귀들을 쫓아내라는 지시도 받았고(마태 10,8),

그래서 마귀들을 쫓아낸 사람들입니다(마르 6,13).

그때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믿음으로) 마귀들을 쫓아냈습니다.


마귀들 쪽에서 생각하면,

그 일은 제자들에게 권한을 주시고 파견하신 예수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마귀들이 제자들에게 복종한 일입니다.

(따라서 그때에도 마귀들이 제자들을 두려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는 일이 생긴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이미 많은 마귀들을 쫓아냈었다는 자만심으로 해석됩니다.


그 자만심이 겨자씨 한 알만큼도 안 되는 믿음으로,

즉 믿음이 없는 상태로 제자들을 떨어뜨렸습니다.

어차피 마귀들은 제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데,

예수님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있는 제자들에게 복종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귀들 입장에서는 예수님과 떨어져 있는 제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어떤 가나안 여자는,

강아지 상태에 있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고,

자기를 도와주실 분은 예수님뿐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 여자는 성경도 모르고, 교리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 예수님을 만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한 '기간' 같은 것은 아예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에 대한 아주 단순하고 겸손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산을 옮길 수도 있다." 라는 말씀과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믿음만 있다면 초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못할 일이 하나도 없는 주님을 믿으라는 뜻이고,

그래서 이 말씀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태 19,26)."

라는 말씀과 뜻이 같습니다.

(산을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 일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우리가 할 일은 그 주님을 믿는 일입니다.)


가나안 여자의 경우,

그 여자의 입장에서는 딸을 괴롭히던 마귀가 쫓겨난 일은(마태 15,28),

산이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간 일과 같았을 것입니다.

마귀를 쫓아내신 일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고,

그 여자가 한 일은 주님을 믿은 일이었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도 얻지 못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에 "혹시 내 믿음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도 안 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실망하지 말고, 다음과 같은 점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1) 우리의 간청을 주님께서 의무적으로 들어 주셔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우리의 간청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지만,

언제 어떻게 들어 주실 것인지를 정하는 것은 주님의 권한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청을 안 들어 주시는 것은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기다려야 합니다.


2)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자만하지 않고,

더 큰 믿음을 가지려고 겸손하게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거나,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도 안 된다고 스스로 비하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사실 자기의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 한 것인지,

그보다 더 큰 것인지, 아니면 더 작은 것인지,

그런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해서 알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알고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믿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끈질기게... 인내하면서.



송영진 모세 신부


연중 제18주간 토요일(8/12)


예수님께서는 간질병에 걸린 아이를 고쳐 주시고는 간절히 바라는 믿음을 강조하십니다. 참으로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불가능한 일이 없으신 하느님의 권능에 참여할 만큼 그 효과는 대단합니다. 산을 옮겨 놓을 수 있고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현실이 우리 눈앞에 온갖 폐해를 늘어놓더라도 거룩한 영의 힘과 예수님의 복음을 믿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가 보았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병든 아이의 아버지가 한 이 말을 통하여 짐작해 볼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철저하게 믿지 못하였다고 느껴집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탄식하십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자주 목격하면서도 그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기적을 바라는 군중, 믿음이 약해 병을 고쳐 주지 못하는 제자들,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백성의 지도자들, 때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자주 불신하는 모든 시대의 당신 제자들인 우리를 생각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변함없는 상황에 질리신 듯하지만, 인간의 불행보다 더 위대한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는 병든 아이의 아버지에게서 생겨나는 믿음을 알 수 없지만, 믿음이 약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대답에서, 믿음이란 양이 아니라 질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 곧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여정은 두렵고 떨리는 의심과 의혹의 어둠을 떨쳐 낸 뒤에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약하다는 것은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을 의심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갖게 해 달라고 청합시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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