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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월요일]손을 뻗어라 (루카 6,6-11)
작성자   김종업  회원정보 쪽지
작성일   2018-09-10 오전 6:18:16  번 호   1782 
조 회   3  추천수   0 


[연중 제23주간 월요일]손을 뻗어라 (루카 6,6-11)



바오로 사도는 악의와 사악이라는 묵은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내자고 한다. (1코린 5,1-8)
형제 여러분, 1 여러분 가운데에서 불륜이 저질러진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이교인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그런 불륜입니다. 곧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산다는 것입니다.
2 그런데도 여러분은 여전히 우쭐거립니다. 여러분은 오히려 슬퍼하며,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여러분 가운데에서 제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3 나는 비록 몸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영으로는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는 것과 다름없이, 그러한 짓을 한 자에게 벌써 판결을 내렸습니다.
4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제 여러분과 나의 영이 우리 주 예수님의 권능을 가지고 함께 모일 때,
5 그러한 자를 사탄에게 넘겨 그 육체는 파멸하게 하고  그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6 여러분의 자만은 좋지 않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7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예수님께서는 고발할 구실을 찾는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신다. (루카 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제1독서 (1코린5,1-8)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었기 때문입니다." (7)


교회 안에 죄를 방치하는 코린토 교인들의 잘못을 강한 어조로 책망하던 바오로가 본절에서 코린토 교인들에게 그들 자신이 누룩없는 자라는 것을 먼저 상기시킨다. 또한 새 반죽이 되기 위해서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라고 명령한다.

6절에서 바오로는 당시 사람들에게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누룩과 관련한 속담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을 사용하여 교훈을 준 반면, 본절에서는 그 누룩을 파스카(유월절 ; 과월절 ; passover) 누룩과 연결시킨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빕월 14일부터 21일에 이르는 7일동안 무교절을 지키는데, 그때에는 누룩을 집안에서 완전히 제거하고, 누룩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탈출12,1-14 ;15-20 ;21-28 ;신명16,1-8) 이것은 출애굽을 기념하기 위한 그들의 축제요, 예식이었다.


출애굽 전에 하느님께서 모든 누룩을 제거하라고 명령하셨는데, 그것은 이집트에서의 우상 숭배와 모든 죄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하는 것이었다.(탈출12,6.15.39 ;13,6 ;23,15 ;34,18 ;신명16,3)

이러한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면서 이집트의 모든 죄들과 결정적 단절을 했다는 일종의 표시였다. 그들이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이집트에서의 죄악된 생활을 청산해야 했던 것이다. 

바오로는 바로 이러한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을 들어, 코린토 교회의 죄에 대한 반응에 대해 권면하고 있다.



한편, '여러분은 ~ 입니다' 로 번역된 '에스테'(este)는 '~이다', '있다'를 뜻하는 '에이미'(eimi)의 현재 직설법이다. 또한, '깨끗이 치우고'로 번역된 '엑카타라테'(ekkatharate)'제거하다', '치워버리다' 라는 뜻을 지닌 '엑카타이로'(ekkathairo)의 부정(不定) 과거 명령법으로 즉각적이고 유효적인 강한 명령의 의미를 드러낸다. 즉 이것은 즉각적 조치를 명령하는 것이다.



 

바오로의 윤리적 명령의 기본 구조의 특징 명령법이 직설법에 근거해 있다는 점이다.(로마 6,11-4.19) 바오로에게 있어서, 명령법은 불가능한 복종을 가능케 하는 근거를 밝히는 직설법을 배제하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직설법에 도덕적 순종을 요구하는 명령법이 결여될 경우, 직설법 자체의 의미는 약화된다.


그렇다면, 본문은 코린토 교회 전체가 한 사람 때문에 범죄의 소굴이 되기 전에, 당장 범죄한 그를 내보내라는 뜻임이 분명하다. 이들이 그를 교회 공동체에서 내보냄으로써 교회의 거룩함과 순결함을 회복해야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범죄자, 교회 공동체에 악표양을 끼치는 자들에 대해, 교회가 제적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의 거룩한 본성을 유지하기 위해, 암적 존재에 대한 정당한 징계가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코린토 교인들은 근친상간의 죄와 불륜의 죄, 기타 죄악들을 그들의 공동체에서 제해버림으로써, 새롭게 계약 공동체로서 자리매김을 해야한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파스카절이 시작되기 전에, 집에 있는 모든 누룩들을 샅샅이 제거하는 것처럼, 그들 모두는 각각 자신의 옛 생활의 잔재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점검하여 제거하는, 거룩한 순결을 회복하기 위한 쇄신과 갱신 작업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리고 코린토 교회 그리스도인 각자가 옛 삶의 잔재를 청산할 때에, 교회 전체가 갱신되어 하느님의 새로운 공동체가 된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바오로는 코린토 교인들을 향해 묵은 누룩(ten palaian zymen ; 텐 팔라이안 쥐엔 ; the old yeast/leaven)을 깨끗이 버리고 청산하는 목적이 '새 반죽이 되기 위함' 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여기서 '새 반죽'(neon phyrama ; 네온 퓌라마 ; a new batch/lump)은  죄를 상징하는 누룩이 없는, 영적으로 거룩하고 순결한 교회 공동체를 가리킨다. 이것이 거룩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속한 구성원들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바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한번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새 반죽이 되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명령법, 즉 '너희는 누룩없는 자들이 되라'가 아니라 직설법,'여러분은 누룩없는 빵입니다' 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코린토 교인들이 장차 미래에 누릴 완성된 상태나 이미 발생된 과거의 상태도 아닌, 지금 현재 그들이 누리고 있는 현재의 신분 상태를 지적하는 것이다.

여기에 근거해서, 그들의 현재 상태를 반성하고 누룩없는 상태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원문에는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gar ; for)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본문은 묵은 누룩을 제거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본문은 코린토 교인들이 어떻게 누룩없는 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기능도 포함하고 있다. 바오로는 본문을 통해 누룩으로 시작한 내용을 파스카 예식과 결합시킨다.

파스카 예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받은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출애굽 당시 하느님이 내리신 재앙으로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들이 죽어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의 피를 징표로 목숨을 건졌다.(탈출12,1-14)

양의 희생적 죽음이 이스라엘의 생명을 구했던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 성혈이 바로 모든 인류의 생명을 구원했던 것이다.


이처럼 본절은 과거 파스카 절기의 의미를 영적으로 적용하여, 파스카 절에 이스라엘이 누룩을 제거하여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자신들이 구원받은 것을 기념했듯이, 파스카 양이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땅히 묵은 누룩이 상징하는 죄를 제거함으로써,영적으로 거룩하고 순결하게 되어야 한다고 권면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죄의 누룩이 없는 자, 즉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1코린2,15) 그리스도의 희생을 힘입어 새 생명을 얻은 자의 당연한 귀결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8)


앞의 7절에서 그리스도를 파스카의 희생양으로 비유했던 바오로가  본절에서는 바로 그 축제를 지키라고 보다 직접적으로 권면한다.

여기서 '축제를 지냅시다' 로 번역된 '헤오르타조멘'(heortazomen)'명절', '축제일' 뜻하는 명사 '헤오르테'(heorte)에서 유래한 동사 '헤오르타조(heortazo)현재 능동태 가정법으로, '우리가 그 축제(절기)를 계속해서 지키자' 라는 뜻을 나타낸다.


사실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구약의 율법과 의식 자체는  폐하고 그 의미만을 취하므로, 신약의 백성들은 구약의 파스카절 자체를 지킬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스카절을 준수할 것을 명령하는 것은 파스카절의 의미를 영적으로 적용하는 일을 계속하라는 의미이다.

이에 대하여 바오로는 먼저 묵은 누룩, 곧 악의(malice)와 사악(wickedness)이라는 누룩으로 파스카절을 지내지 말라고 한다. 여기서 묵은 누룩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은 같은 의미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께 속하기 전에 가졌던 죄악된 습관을 말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여 누룩없는 빵을 먹으며 파스카절을 지켰듯이, 그리스도의 구속 성혈의 공로로 죄악된 세상에서 구원받은 백성들 역시 '누룩'이 상징하는 과거의 죄악된 습성을 버림으로써, 자신이 얻은 구원을 기념하라는 것이다.


한편, 바오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없는 빵을 취할 것을 명령한다.  

여기서 '순결'이라 번역된 '에일리크리네이아스'(eilikrineias; sincerity)'햇빛'이란 뜻을 지닌 '헬레'(hele) '판단하다' 라는 뜻을 지닌 '크리노'(krino)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는 '햇빛 아래서 판단하다' 라는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자주 '모범적인 행동'(착한 표양)을 의미한다.

또한 '진실'로 번역된 '알레테이아스'(aletheias ;truth)는  부정 접두어 '아'(a)'숨기다', '감추다'라는 뜻을 지닌 '레도'(letho)의 합성어로 '감추지 않고 드러내다'란 뜻을 나타낸다.

이렇게 바오로는 파스카절 '누룩없는 빵'의 성격을햇빛 아래서 판단하는 것과 또한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과 같은 것으로 규정하여, 코린토 교인들이 과거에 죄악된 삶과 구별되는,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복음(루카6,6~11)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8)


루카 복음 6장 8절의 서두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마르코와 마태오가 표현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그들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아셨다고 기록한다. 여기서 '아시고'로 번역한 '에데이'(edei; knew)'알다'라는 동사 '오이다'(oida)의 과거 완료로서 이미 완료된 동작의 남은 결과의 상태가 유지되고 있음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엿보고 있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생각을 이미 아셨다는 것을 말한다.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루카 복음 6장 7절에 밝혀져 있듯이 예수님을 책잡아 고발하려는 불순한 음모였다.


루카 복음사가는 아마도 사람들의 생각을 예수님께서 신적인 통찰력으로 간파하고 계셨음을  강조하고 싶어서 독자적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고 말씀하신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예수님을 고발하려는 구실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무리들 가운데에 자신들을 숨기고 있는 반면에, 이 사실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병을 고치는 행위를 그들이 잘 볼 수 있도록 그를 사람들이 있는 한가운데로 서게 하신다.

악한 목적을 가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자신을 숨기고 있지만, 선을 행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공개적으로 행하신다.


예수님께서 공개적 치유를 행하신 것사람들로 하여금 안식일의 올바른 의미를 깨닫도록 가르치시기 위한 목적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러한 행위가 적대자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킬 것을 알고 계셨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하실 일을 당당하게 행하셨다.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계명< /조영만 신부

굽은 마음을 퍼라

 반영억라파엘신부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가을을 느끼게 합니다. 맑고 푸른 하늘은 곡식을 여물게 하는 더없이 좋은 선물입니다. 수확의 때가 되면 수고와 땀의 결실을 맛보게 되는 기쁨이 함께합니다. 우리의 삶의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때를 기다립니다. 약속된 하느님의 나라를 기억하며 지금 여기서 수고와 땀의 결실을 기뻐합니다. 기쁨은 희망하는 만큼 확인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시며 당신의 능력을 통해서 오그라든 손을 이전처럼 성하게 하셨습니다(루가6,10). 손을 뻗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 주는 행위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주는 것을 받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손을 뻗어 서로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손을 편다는 것은 본인뿐 아니라 모두가 기뻐해야할 일입니다. 그런 기쁨이라면 더 많이 누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이 그 사람들입니다(루가6,7).

그들은 마음이 오그라들어서 예수님의 활동을 방해하고 마침내는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 수 있을 것인지 의논하였습니다. 자신의 뜻이 이루지지 않는다고 골을 부리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것은 마음이 오그라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을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조롱거리가 되어도(예레15,10) 뼛속에 가두어둔 주 하느님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예레20,9) 아버지의 뜻을 따라 가실 길을 가셨습니다.


혹시라도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픈 것은 아닌지? 내가 만들어 놓은 하느님 상 때문에 다른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아닌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 마음을 넣어주며 새 기운을 불어 넣어 주시길 청합니다. 돌처럼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 주시길 희망합니다. 그리하여 안식일은 물리적으로 쉬는 것보다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더불어 향유하는 것이라는 깨우침을 얻길 바랍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일에서든 트집을 잡으려고 합니다. 그는 무엇인가 꼬인 사람입니다. 얽힌 것을 풀면 좋으련만 바른 것도 그릇 것으로 보니 그 사람은 불행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루카7,32).

 "움직여야할 때 움직이고 멈추어야 할 때 멈추어야 하는 것이 삶이고. 움직여야할 때 움직이지 않고 멈추어야 할 때 멈추지 않는 것이 죽음이다"(이현주).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판단과 사람의 판단에 있어서 어느 판단을 따라야 할까요? 당연히 하느님의 판단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우선시 되는 것은 하느님이시고 동시에 사람입니다.


사사건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못마땅해 하는 사람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여전히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긍정을 찾아내는 삶입니다. 긍정의 주 하느님을 생각하십시오! 행동은 마음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무엇이든 주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마음자세를 굳건히 하여 참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손을 뻗어 주님의 손을 꼭 잡으시기 바랍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사랑에 사랑을 더하여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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