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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수요일]행복하여라 (루가 6,20-26)
작성자   김종업  회원정보 쪽지
작성일   2018-09-12 오전 7:26:51  번 호   1784 
조 회   4  추천수   0 


 [연중 제23주간 수요일]행복하여라 (루가 6,20-26)

바오로 사도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현재의 재난 때문에 지금 그대로 있는 것이 사람에게 좋다고 한다. (1코린 7,25-31)
형제 여러분, 25 미혼자들에 관해서는 내가 주님의 명령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자비를 입어 믿을 만한 사람이 된 자로서 의견을 내놓습니다.
26 현재의 재난 때문에 지금 그대로 있는 것이 사람에게 좋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27 그대는 아내에게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아내와 갈라졌습니까?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28 그러나 그대가 혼인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또 처녀가 혼인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혼인하는 이들은 현세의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것을 면하게 하고 싶습니다.
29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30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시며,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하고 선언하신다. (루가 6,20-26)
그때에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독서 (1코린7,25-31)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것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9-31)


본문은 종말 의식이 팽배했던 코린토 교인들에게, 혼인 문제를 중심으로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 교훈한 내용이다. 여기서 '때'는 카이로스'(kairos)로서, 본래 '결정적 시간', '적절한 때', 더 이상 미룰 수도 바꿀 수도 없는, 하느님께서 영원으로부터 계획하신 일이 정해진 장소, 사람들 앞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충만한 시간, 신학적으로는 '종말론적 구원의 시간'을 말한다.


여기서는 '때'가 구체적으로 어떤 뜻으로 사용되었는가?

첫째, 코린토 교인들이 처해있던 고난의 상황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둘째, 성도의 개인적 종말을 뜻하는 죽음의 때로 보는 견해가 있다.

셋째, 예수님 재림 전, 즉 종말 이전의 때를 가리킨다.

이 가운데 셋째 견해가 문맥상 타당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바오로는 여기서 코린토 교인들을 대상으로 종말 의식을 염두에 두고 교훈하는 것일까? 테살로니카 2서 2장 2절에서


"누가 예언이나 설교로 또 우리가 보냈다는 편지를 가지고 주님의 날이  이미 왔다고 말하더라도,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당시 팽배해 있던 종말 사상과 관련하여 오히려 불안한 종말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바로 가르치며, 지혜롭게 종말에 대처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에 대해 지적해 주는 것을 사명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오로가 혼인한 남편에 대해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살라고 말하는 진의는 무엇인가?  

이것은 남편와 아내가 혼인이라는 제도 내에서 금욕 생활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런 사실은 바오로가 이미 7장 2-5절에서 혼인을 권장한 바 있고, 혼인 생활에 있어 부부간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바오로의 7장 29절의 권면은 31절 후반절과 32절, 33절에서 지적한 내용들을 참고로 판단할 때, 보다 분명한 의미가 드러난다.

첫째, 혼인한 남자는 그가 따라서 살기로 한 혼인 제도가 신성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곧 사라져 버릴 이 세상의 질서에 속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을 아내가 아닌 주님께 두어야 하고 혼인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일편단심으로 주님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은 종말론적인 삶이 지닌 역설적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삶을 추구하고 하느님께 봉사하며, 세상으로부터 초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바오로는 예수님 강생부터 재림 사이의 단축된 시간 상황에서, '오고 있는 미래의 시간'을 삶의 기준으로 두고, 종말론적 긴장감을 가지고 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유대 묵시 문학이 표현하고 있는 세계관, 즉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를 반대하고 있으며, 종말의 시대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다는 코린토 교인들의 교만한 생각에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을 보는 전혀 다른 시각,종말론적 시각으로 세상을 관조하며 그로부터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성숙한 신앙인의 삶이다.


바오로는 29절의 아내 있는 자들에 대한 언급에 이어서, 계속하여 우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물건을 산 사람에 언급하면서, 혼인 문제를 중심으로 종말이 임박한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자세에 대해 교훈한다.

알다시피, 우는 사람은 자신의 슬픔에 도취되기 쉽고, 기뻐하는 사람은 자신이 행운을 신봉하여 과도하게 기뻐하기 쉽다. 그리고 물건을 산 사람(매매하는 자)은 자신들의 새로운 재산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그런데 바오로는 이러한 삶의 태도에 대하여 종말론적 관점을 거론함으로써 심각한 재고를 요청하고 있다.


바오로는 기혼자들에 대한 충고에서 금욕 생활을 옹호하지 않은 것 같이(29절), 여기서도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무관심과 냉담(apathy)은 옹호하지 않는다. 바오로는 초점은 종말을 기대하며 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에 있다.

 

바오로는 혼인, 슬픔, 기쁨, 재물 등으로 대표될 수 있는 모든 인간의 생사고락 및 사회 제도를 인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현세적인 세상사의 과도한 몰두에 대해서는 경고하고 있다.

그는 종말이 임박할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현세적인 문제들에 얽매여서

곧 오실 신랑되신 그리스도를 잊어버리거나 무관심한 삶을 살아서는 안됨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바오로는 29절 이하에서 종말이 임박한 때를 살아가는 성도의 자세를 언급하던 중에 31절에서는 세상사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 것을  권면한다.

여기서 '세상'이라 번역된 '코스몬'(kosmon)은 본래 '세상'을 뜻하는 '코스모스'(kosmos)의 목적격이므로, 굳이 '세상 물건' 이라고 번역할 필요가 없다.

바오로는 '코스몬' 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시간과 물질 때문에 강하게 밀착되어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굳이 번역한다면,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 이다.


그런데 바오로에 따르면, 이런 사람들이 그 세상을 다 이용하지 못하는 자같이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용하지 않는' 으로 번역된 '카타크로메노이'(katachromenoi)'카타크라오마이'(katachromai)현재 분사형이며, 이 단어는 '~에 대하여' 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 '카타'(kata)와 '쓰다', '사용하다', '이용하다' 라는 뜻을 지닌 동사 '크라오마이'(chraomai)합성된 동사이다.


그러나 '카타'가 종종 단순히 동사의 의미를 강화시켜 주는 접두사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본절에 언급된 '카타크로메노이' '완전히 사용하다' 라는 뜻이 된다. 

바오로가 여기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을 이용하는 삶은 세상에 완전히 몰두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원문에는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gar)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 이라는 어구가 세상에 완전히 몰두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바오로는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의 몰두는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형제'로 번역된 '스케마'(schema)'모양', '현상', '태도', '습관' 을 뜻하는 말로서, '본질' 또는 '실체'와는 대립되는 의미를 나타낸다.그렇다면, 본문에 언급된 '스케마'는 변하게 될 것이라고 여겨지는, 눈에 보이는 외적 형태의 총체를 뜻하는 것이다.

'혼인'을 비롯한 사회적 관계들을 위한 제도와 매매를 비롯한 경제적 활동등 세상의 온갖 제도들과 관계들은 '그때' 즉 종말이 되면 사라지고 말 것이다(29절).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복음(루카6,20~26)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2~23)


루카 복음사가에 의하면 네번째로 소개되는 이 축복 마태오 복음여덟번째 축복에 이어 나오는 보충 축복이라고 할 수 있는 마태오 복음 5장 11~12절과 상응되고 있다.

여기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박해받는 자들에게 복이 있을 것이라고 밝히며,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주어질 박해에 대해 네 가지로 표현한다.


첫째미워하는 행동이 나타날 것으로 예고한다. '미워하면'에 해당하는 '미세소신'(misesosin; hate)어떤 행동에 대한 반감 뿐만 아니라 풀기 어려운 적개심을 뜻하는 데 사용되는 단어이다. 

여기서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 대해서 강한 적개심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적개심은 믿는 자들을 쫓아내는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쫓아내고'로 번역된 '아포리소신'(aphorisosin; separate; exclude)'내쫓다', '배척하다'라는 뜻이며, 실제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믿는 자들을 소속된 공동체로부터 추방하거나 소외시켜 버렸다(요한9,22참조).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 대하여 모욕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모욕하고'에 해당하는 '오네이디소신'(oneidisosin; reproach; insult)깔보고 욕되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부당하다고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믿는 자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루카 복음사가는 '중상하면'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원문에는 '에크발로신 토 오노마 휘몬 호스 포네론'(ekbalosin to onoma hymon hos poneron; reject your name as evil)이다. 이것은 '너희의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리면'(cast out)이라는 뜻인데, 믿는 자들이 당하게 될 핍박을 묘사하고 있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이며 제자라는 그 이름 자체로 말미암아 적대자들에게 악하다고 단죄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열된 네 가지의 경우가 모두, '사람의 아들 때문에, 즉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받게 되는 고난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고난을 받는 자들이 복을 받게 될 것임을 선포하고 있다.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신앙인들은 악마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분명 박해와 고난을 당할 것이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박해받는 자마다 '생명의 화관', 즉 영광의 상급에 대한 약속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은 축복이 되는 것이다(묵시2,10).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여기서 '그날'(in that day)는 바로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는 때, 즉 세상으로부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박해받는 때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기뻐하고 뛰놀아라'단순 과거 명령법으로 쓰고 있다. 단순 과거 시제를 사용하여 어느 특정한 시간에 일시적으로 취해져야 할 것을 표현하는데, '기뻐하고 뛰놀아라'는 명령은 '그날에'라는 시간에 한정두고 있는 것이다.


박해가 지나간 후에 그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며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핍박의 현장에서 적극적인 기쁨의 행동을 취하라는 역설적 명령인 것이다.

그리고 핍박받을 때 오히려 '기뻐하고 뛰놀다'라는 역설적 명령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두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번째 이유하늘에서 박해받는 자들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서 '상'에 해당하는 '미스토스'(misthos; reward)선한 행위와 노력에 대해 하느님께서 수여하실 보상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박해를 당하는 그들의 행위가 선한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결코 그들이 당했던 일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해 두심으로써, 신실한 종들에게 꼭 상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말하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그들의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똑같이 그렇게 핍박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루카복음 6장 26절과 관련지어 보면, 거짓 예언자들은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칭찬을 들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듣고 칭찬을 듣는 자는 거짓 예언자라는 말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는 것이 곧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하나의 증거가 되기 때문에 기뻐 뛰놀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1베드4,14; 로마8,36).



오늘 예수님께서는 참된 행복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 굶주리는 사람, 우는 사람은 어떠한 처지에 놓이든지 오직 주님 뜻만을 찾고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마음과 힘을 하느님께 바치기에 지금의 어려운 상태를 역전시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현재에 안주하려는 욕망이 없기에 참으로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반면 마음이 현세의 온갖 욕망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얼마나 묶여 있는 존재입니까?
복음에서 말하는 행복을 차지하려면 삶에서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늘 바쁘기만 한 하루하루의 삶 안에 하느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지요. 그만하면 되었다는 자족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문제는 탐욕입니다. 탐욕은 사람을 가만두지 않지요. 탐욕은 질투와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며, 저마다 바벨탑을 쌓아 가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더 많이 갖는 것이 행복한 삶은 아닙니다. 인간다운 삶은 더욱 아니지요. 따라서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것은 ‘무엇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사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과도한 소유욕과 무절제한 낭비는 영적 빈곤에 이르게 합니다. 이는 인간다운 삶이 아닙니다.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명상과 기도에 집중하는 것도 마음을 비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느님 안에서 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맛보게 되지 않겠습니까?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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