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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자비(루카6,27-38)
작성자   김종업  회원정보 쪽지
작성일   2018-09-13 오전 4:21:28  번 호   1785 
조 회   4  추천수   0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자비(루카6,27-38)


바오로 사도는,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한다면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는 문제를 이야기한다. (1코린 8,1ㄷ-7.11-13)
형제 여러분, 1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2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3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그를 알아주십니다.
4 그런데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관련하여, 우리는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5 하늘에도 땅에도 이른바 신들이 있다 하지만 ─ 과연 신도 많고 주님도 많습니다만 ─
6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7 그렇지만 누구나 다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아직까지도 우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정말로 그렇게 알고 먹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약한 양심이 더럽혀집니다.
11 그래서 약한 그 사람은 그대의 지식 때문에 멸망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형제를 위해서도 돌아가셨습니다.
12 여러분이 이렇게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약한 그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죄짓게 한다면, 나는 내 형제를 죄짓게 하지 않도록  차라리 고기를 영영 먹지 않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루카6,27-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제1독서(1코린 8,1ㄷ~7.11~13)


"그런데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관련하여, 우리는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 밖에 계시지 않는다" 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4)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6)


"그런데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관련하여, 우리는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 밖에 계시지 않는다" 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4)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1서 8장 1절에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에 대한 언급을 시작해서 8장 3절까지는 주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 문제에 관해서는 지식보다 사랑이 중요하다는 일반 원리에 대해 제시하였다.


반면에 8장 4절부터 12절까지는 본격적으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 취식' 문제와 관련된 제반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특히 8장 4절의 경우,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 취식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전에 우상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하여 규정 주고 있다.


이것은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교인들 중 일부의 주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요약하면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 밖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로 번역된 '우덴 에이돌론 엔 코스모'(uden eidolon en kosmo)에서 '없다'로 번역된 '우덴'(uden)원형 '우데이스'(udeis) '없다' 라는 뜻의 '우데'(ude)'하나' 라는 뜻의 '헤이스'(heis)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는 '단 하나도 없다'란 강력한 의미를 지닌다.


우상 그 자체신(神)이 아니라 나무 조각이나 쇠조각에 불과한 것으로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허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도 바오로의 언급은 코린토1서 10장 21절, 22절에 언급되어 있는 것, 우상의 이면에 있는 마귀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상호 모순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우상들의 배후에 마귀들의 존재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우상 그 자체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사도 바오로가 세상에 어떤 우상도 없다고 말한 것은 마귀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그 어떤 존재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참된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이다(시편115,4~8; 135,15~18).


당시 그리스인들이 섬기던 제우스(Zeus; Ζεύς)아테나(Athene; Αθηνά), 포세이돈(Poseidon; Ποσειδών), 이시스(Isis; Ἶσις), 세라피우스(Serapis; Σάραπις), 아스클레피우스(Aesculapius;  Ἀσκληπιός) 같은 신들은 사실상 이교적인 미신에 불과하며 살아 계시는 참된 하느님이 아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단순히 신상이거나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신화적 산물일 뿐, 신(神)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an idol is nothing). 살아 역사(役事)하시는 신(神)은 오직 한 분, 유일하신 하느님뿐이신 것이다(신명6,14; 이사44,8; 45,5).


즉 사도 바오로는 여기서 이교도들이 흔히 신으로 간주하여 제사드리는 대상들은 참된 의미의 하느님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며,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1코린10,19~22참조).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6)


코린토1서 8장 5절과 6절을 비교해 볼 때, 6절은 하느님만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과 다신론자(多神論者)들인 우상 숭배자들을 강하게 대조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한'으로 번역된 '헤이스'(heis)는 일반적으로 '많다는 것에 대한 대조의 의미'로 사용되며, 다른 것들은 배제하는 강조적 용법으로서 '단일', '유일' 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본절은 그리스도인들은 한 분 하느님과 한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데서 결정적으로 우상 숭배자들과 구분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는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아버지' 이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바로 이 유일신에 대해서 '아버지' 라는 독특한 호칭을 붙이는데, 이는 유일한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동시에, 그의 아드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자녀된 그리스도인들의 아버지이시라는 의미도 나타낸다.


또한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에서 드러나지만, 그분은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여기서 '에게서'로 번역된 '엑스'(eks)'~로부터', '~로 말미암아' 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로서 만물의 출처를 나타낸다. 


특히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라는 사도 바오로의 진술은 그리스의 제신(諸神)들이 각각 자신들에게 할당된 영역안에서만 영향력을 미치는 제한된 존재라는 점과 강한 대조를 이룬다.  또한 사도 바오로는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는 '주님'으로도 호칭되는 분이시다. 여기서 '주님'으로 번역된 '퀴리오스'(kyrios) 70인역(LXX; 구약 히브리어의 그리스 번역본)의 경우, 하느님의 히브리어 이름 'Jehova'역어이다.


물론 이 말이 당시 그리스 세계에서 '선생님'이란 뜻을 지녔다 할지라도, 여기서는 문맥상 '그리스도의 하느님 되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Hellenism 세계에서 '주님'(主) 이라는 말이 '메시야' 라는 표현보다 예수님의 신적왕권을 더 잘 표현하는 방식이었다는 사실은 이 견해를 지지한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 역시 천주 성자 제2위 하느님으로서 만물의 창조자이시다. 이러한 사실은 '~을 통하여' 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 '디아'(dia)축약형 '디'(di)가 잘 드러내준다.

이 전치사는 우리 또한 그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지니게 되었음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이렇게 하느님과 그리스도는 한 하느님으로서 인류의 창조와 구원에 개입하셨다. 이것은 성령 하느님께서도 마찬가지이시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창조사업과 구원사업과 성화(聖化)사업에 함께 다 개입하셨고, 관여하신다.


그러나 구세 경륜적 삼위일체론에서 성삼위의 역할과 기능면에서 구분한다면, 창조사업은 하느님의 전능을 전제로 하니까 창조주 아버지 하느님(성부)께 돌리고, 구원사업은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과 희생 전제로 하니까 성자 예수님께 돌리고, 성화사업은 예수님의 구속사업의 공로를 나누어 주는 일이니까, 의화와 성화의 영이신 천주 성령께 돌릴 뿐이다.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복음(루카6,27~38)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29)


루카복음 6장 27절과 28절에는 2인칭 복수 인칭 대명사 '휘민'(hymin)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명령의 대상'너희'라고 하는 데 반해, 루카복음 6장 29절부터 31절까지는 2인칭 단수 인칭 대명사 '세'(se) '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2인칭 복수에서 단수로 전환한 것은 이 말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개인을 보다 깊게 성찰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이다.

그리고 '뺨'에 해당하는 '시아고나'(siagona; cheek)는 정확히 사람 얼굴의 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턱' 또는 '턱뼈'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5장 39절에서는 '오른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대 근동에서 손으로 뺨을 때리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었다. 특히 히브리인들은 오른손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오른뺨을 때렸다는 것은 정면에서 손등으로 쳤을 경우뒤에서 손바닥으로 쳤을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유대 풍습으로 볼 때 손등으로 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보다 두 배나 모욕을 주는 것이다. 또한 등 뒤에서 때렸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의의 공격을 받은 것이 된다.

그러나 본문은 이때에 오히려 '다른 뺨'도 돌려대라고 말한다. 이것은 실제로 왼편 뺨까지 때리도록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어떤 경우에라도 직접적으로 복수하지 말고 고통과 모욕을 견디라는 교훈이다.


원수들의 경멸적인 폭행을 당하더라도, 같이 대적하여 맞서기보다는 사랑의 원리로 무저항, 무보복의 행동을 보이라는 명령이다.

이것은 어떤 문제에 직접 대응하여 복수가 악순환되는 것을 막고, 오히려 상대방에게 관용과 무저항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라는 말이다.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두라'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5장 40절루카 복음 6장 29절의 후반절과는 달리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마태오 복음사가속옷을 먼저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웃의 겉옷을 담보로 잡을 수 없다는 율법의 규정을 잘 알고 있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기록했기 때문이다(탈출22,25~26).


속옷은 겉옷보다 가격이 싸고, 보잘것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반면에 겉옷은 가격도 비싸고, 일교차가 심한 팔레스티나에서 밤에 덮고 자야 하는 필수품이므로, 전당잡힐 수조차 없는 품목이었다(탈출22,26; 신명24,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옷을 달라고 하는 이에게 더 비싸고, 없으면 당장 추위에 떨어야 하는 겉옷까지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양도하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재산상의 분쟁이나 강도를 당한 상황에서 속옷조차 취하려는 상대에 대하여 저항하지 말고, 오히려 사랑을 베풀라는 뜻이다.

반면에 루카복음중요한 것을 달라는 이에게 사소한 것까지도 모두 주라는 의미로 겉옷을 먼저 언급했지만, 내용은 동일하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원수마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이런 가르침을 실천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 않습니까?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도 잘못을 조금도 뉘우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습니까? 생각만 해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요. 그럴 때마다 악인까지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마음을 떠올려야 하겠습니다. 그들을 하느님께 맡기고 기도해 줄 때, 그들 마음속에 박혀 있는 악의 기운이 사라지며 서서히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이는 결국 악은 선으로밖에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계속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들에게만 잘하는 것은 어떤 대가를 바라는 행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당신 사랑을 무상으로 베푸셨습니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어렵더라도 우리가 온 힘을 기울여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때,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보상을 받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랑의 행위를 통해 이미 하느님을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오히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사랑의 증거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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