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 서울대교구 가톨릭정보 뉴스 메일 갤러리 자료실 게시판 클럽 UCC MY
지금 여기에
  시샵: 김종업  총회원: 16명  개설일: 2008/04/16  회원분류: 게스트 http://club.catholic.or.kr/dydtjdhktkfkd (Today 2 | Total 8,450) 
클럽가입신청하기
클럽 성경쓰기
여정(길) 
공지사항
성경
매일말씀묵상
주일복음강론
성경/교회자료
구약성경해설
구약외경
구약 공부,묵상
요한복음
요한묵시록
신약성경해설
신약 공부,묵상
신약 외경
성경속 상징들
성경 한마디
천국복음
사도신경
산상수훈
사랑의 향기 
성경비유
영상특강/강의
하늘보화/QA
도란도란
도표및 지도
교리방/기도문
십자가의길/묵주기도
소공동체
성지를 찿아서
성인성녀傳
성화/이콘
이방종교
앨범
천상의 노래 
성가:연중
성가/성심.봉헌,
성가/성체.대림*성탄
사순.부활.성령
참회위령성모성인축가
미사곡/국악성가
기도공동체성가
생활/복음성가
주보공지
삶의 자리 
좋은글
역사/뉴스
신비한세상
노래방
영화/동영상
웃음나라
게임
건강/생활상식
맛자랑
직거래장터
마스코트
창골방 
저장고
果房 /과방
종친회
작업실
사용자정의
환영합니다.
초대
메일
내정보
성경
회원
매일미사
환경
기도문
관리
성인

매일말씀묵상

수정 삭제 답변 목록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증언 (마태10,24-33)
작성자   김종업  회원정보 쪽지
작성일   2020-07-11 오전 5:47:50  번 호   2340 
조 회   6  추천수   0 


2020711일 토요일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증언 (마태10,24-33)

   

1독서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인데,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이사6,1-8)

1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2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

3 그리고 그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

4 그 외치는 소리에 문지방 바닥이 뒤흔들리고 성전은 연기로 가득 찼다.

5 나는 말하였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6 그러자 사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 7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8 그때에 나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내가 아뢰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화답송 시편 93(92),1ㄱㄴ.1-2.5(1)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주님이 차려입고 권능의 띠를 두르셨네.

누리는 정녕 굳게 세워져 흔들리지 않네. 예로부터 주님 어좌는 굳게 세워지고, 영원으로부터 주님은 계시네.

당신 법은 실로 참되며, 당신 집에는 거룩함이 서리나이다. 주님, 길이길이 그러하리이다.


복음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마태10,24-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제1독서(이사6,1~8)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1~2)


앞선 이사야서 12~530절은 주님을 배반한 남부 유다를 향하여 하느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란 사실과 더불어 주님의 날에 있을 메시야 왕국의 도래에 대하여 예언하였다.

이제 이어지는 이사야서 6장은 이사야가 주님의 오심과 성전 숯불의 환시를 통하여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구약의 거의 모든 예언서에는 그 예언서를 쓴 예언자가 하느님의 소명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술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예언서의 초두에 이런 사실이 소개되는데 (예레1,1~19; 에제1,1~3.15), 이에 반해 이사야 예언서에는 남부 유다에 대한 심판 선언이 너무나 중차대한 문제이며 조금도 늦출 수 없는 시급한 사안임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로 미뤄졌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이것은 이사야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입은 하느님의 종이며, 그의 메시지가 바로 하느님의 말씀임을 독자들에게 명확하게 인식시키기 위한 의도로도 볼 수 있다. 먼저 이사야서 61~3절은 이사야에게 예언자로서 소명을 주신 주님의 장엄한 모습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이사야가 성전 위에 높이 들리고 사람들이 에워싼 어좌에 앉으신 주님을 본 시점을 밝히는 본문의 내용으로 시작된다. 이 일은 남부 유다의 제10대 임금이었던 우찌야가 죽던 해에 발생하였다. 그 해는 b.c.739년으로 추정된다.


우찌야 즉 '우찌야후'(uzziyahu)'능력'(1역대16,11),''(탈출15,2)이란 의미의 명사 '오즈'(oz)'야훼'의 축약형 '야흐'(yah)가 결합된 형태로 '주님의 능력'이란 신앙적인 의미를 지닌 이름이다.

그는 '아자르야'(2열왕15,1)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돕다'(여호1,14)란 뜻의 동사 '아자르'(azar)'야훼'의 축약형 '야흐'(yah)가 결합된 형태로서 '주님께서 도우셨다'라는 의미이다.

그는 부친 아마츠야에 이어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남부 유다의 왕위에 올라 죽는 날까지 무려 52년 동안 남부 유다 왕국을 통치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통치 후기에 문둥병이 들어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삶을 살다가 병으로 죽게 된다.


그의 통치 전반과 중반은 주 하느님을 굳게 신뢰하고 예언자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필리스티아와 암몬 등을 정복하고, 필리스티아 땅에 성()을 건축하고 암몬 왕으로부터 조공을 받고, 나아가 이집트의 변방에까지 그 명성을 떨치는 등 그 왕국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러나 그가 강성해지면서 교만에 빠지게 되어 사제 외에는 들어가지 못할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려 하였다.

그것이 죄라고 말리는 아자르야 사제의 손을 뿌리치면서까지 분향하기를 고집하는 순간, 주님께서 그를 치셔서 그 이마에 문둥병(나병)이 생기게 하셨다. 그리고 그 때부터 그는 왕궁이 아닌 별궁으로 내려 앉고, 나아가 성전 출입을 제한당하였다. 그런 비참한 말년을 쓸쓸히 보내다가 그의 나이 67세에 세상을 뜨게 된 것이다 (2열왕15,1~7; 2역대26,1~23).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받은 소명은 그가 예언자 직분을 시작하면서 받은 소명이 아니라 예언자 직분을 수행하던 중간에 주님께로부터 받은 특별한 소명임이 분명하다즉 본장에 나오는 소명과 별개로 이사야는 과거에 하느님으로부터 예언자로 소명을 받은 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굳이 이를 따로 소개하지 않는 것은 본장의 내용만으로도 그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소명을 받은 예언자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1인칭 단수를 사용하여 자신이 직접 주님의 환시를 보았다는 증거를 많이 한다.


아합과 여호사팟 임금 당시의 예언자 미카야가 그랬고(1열왕22,17.19-23), 즈카르야 예언자(즈카1,8), 에제키엘 예언자, 예레미야 예언자 등이 그러했다이와 같은 1인칭 단수의 사용은 그들 각자가 보았다고 하는 그 환시의 신빙성의 무게를 더해준다. 3자의 경험이 아닌, 자기 자신의 경험을 직접 기술한 것이기 떄문이다.


한편, 본문에서 '나는 보았는데'에 해당하는 '와에르에'(waereh)는 계속적 용법으로 사용된 '와우'(wau)에 동사 '라아'(rah)의 미완료형이 결합된 형태이다이것은 우찌야 임금이 죽은 직후에 이사야가 환시를 보았다는 사실 및 그 때에 일회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사야서 11절에는 이사야가 환시를 보았다는 것이 '하자'(haza)동사를 통해 표현된 반면에, 후자는 실제적으로 실체를 매우 확실하고 분명하게 바라봄으로써 실제적으로 이를 체험하여 아는 것과 관련된 표현인 것이다.

즉 이것은 이사야 예언자가 본장에서 경험한 주 하느님의 천상의 모습과 그에 바탕을 둔 그 자신의 죄의 용서에 관한 환시가 그에게 있어 현실적인 일처럼 분명히 나타났음을 강조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이사야 예언자가 본 환시는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 하느님이었다. 이같은 장면은 아합 임금 당시 예언자로 활약한 미카야의 증언에도 나오며 (1열왕22,17.19~23), 욥기에서도 유사한 묘사가 나온다(욥기1,6~12).

하느님께서는 실제로 물리적인 육체가 없으신 순수한 영이시기에 사람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분이시다그러나 때때로 주님께서는 당신의 종에게 계시를 주시며, 이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인간의 수준에 맞추어 시각적 형상으로 나타나시기도 한다.


한편, 본문에서 주어로 제시되는 '주님'에 해당하는 '아도나이'(adonai)는 주 하느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호칭이다인간 세상 뿐 아니라 온 우주를 권능으로 주관하시는 주님의 면모를 강조할 때 사용되는 호칭이 바로 '아도나이'인 것이다.

그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으신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주님께서 그 어떠한 세력도 감히 필적할 수 없는 높으신 분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그가 이 세상을 통치하심을 나타낸다.


특히 '앉아 계시는'에 해당하는 '요셰브'(yosheb)는 오래 동안 머물러 있거나 거주하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 '야샤브'(yashab)의 능동태 분사형으로서 주님의 왕적 통치가 항구적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주님의 통치는 인생사의 영고성쇠와 관계없이 계속되어 왔고 계속 될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영원한 임금되심과 항구적인 통치의 면모는 과거에 위대한 임금으로 통치하다가 범죄로 징계를 당해 비참한 신세에 떨어지고, 결국 죽어 무덤에 돌아간 인간 임금 우찌야의 면모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분의 옷자락'에 해당하는 '슐라이우'(shulayu)의 원형 ''(shul)은 길게 늘어뜨린 옷자락을 의미하는데, 본문에서는 복수형으로 사용되었다본문은 좌우 손목 부분의 옷자락을 비롯하여 발을 덮어 가리는 옷자락까지 모든 부문의 옷자락이 길게 늘어뜨러져 성전을 가득 덮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이것은 만왕의 왕이신 주 하느님의 위엄과 권능이 온 세상을 덮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주님의 권능 앞에 모든 피조물은 굴복하고 꿇어 엎드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성전'에 해당하는 '하헤칼'(hahekal)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지금 이사야가 보고 있는 것은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시이며 천상의 상황이기 떄문에 이 문맥에서는 천상에 있는 주님의 궁전을 가리킨다.

혹자는 이것을 성전과 관련지어 이사야가 성전에 있었으며, 성전에 가득한 주님의 옷자락은 분향 제단으로부터 올라간 연기가 성소 안을 가득 채운 것을 나타낸 것으로 해설한다.

그러나 그가 현재 성전에 있든 그렇지 않든, 그가 환시 중에 목도한 것은 성전 그 자체를 비유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 영광중에 거하시는 천상의 거소로 보는 것이 문맥상 보다 적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2)


이사야서 62절과 3절은 하늘의 사자들이 주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사랍들'에 해당하는 '세라핌'(seraphim)'불타다'(예레51,3)란 뜻의 동사 '사라프'(saraph)에서 유래하여 문자적으로 '불탐'이란 의미를 지닌 '사라프'의 복수형이다. 따라서 '세라핌'은 문자적으로 '불타는 것들'이란 뜻을 지닌다.

천사들에 대하여 이러한 명칭이 주어진 것은 부정한 것을 불로 태워 없애는 것처럼 그들이 거룩하고 순결한 존재이며, 또한 불꽃처럼 화려하고 접근할 수 없는 존재임을 드러내고 사랑을 상징한다.

 

이미지 자세히보기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복음(마태10,24~33)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28~30)


마태오 복음 1028절은 사탄과 하느님의 능력의 차이를 분명하게 비교하여 제시해 주고 있다.

사탄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만 자신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사탄의 한계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지도 파멸시키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동시에 욥기 1장에 나오는 데로, 인간의 육신도 하느님의 허락없이는 손을 대지 못한다는 것이 사탄의 한계이다.


사탄이 주는 고통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육신'('소마'; soma; body)에까지 밖에 미치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 주시는 고통은 '영혼'('프쉬케'; psche; soul)에까지 미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 1028절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고통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참 두려움의 대상이 사탄이 아니고 바로 주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 구절이 박해와 그로 인한 고통을 다루는 문맥에서 나오기 때문에 복음 전파자들이 사탄의 사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박해를 받을지라도, 적대자들이 주는 고통은 그들의 육신에까지 밖에 미치지 못하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이란 표현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에 해당하는 '아폴레사이'(apolesai; to destroy; can destroy)의 원형 '아폴뤼미'(apollymi)'없어지다', '사라지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사물에 대해 사용될 경우는 '없어지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인격적 존재에 대해 사용될 경우는 존재 자체 보다는 존재의 가치를 없앤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따라서 이 구절은 복음 전파자가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생명을 잃어도 그의 영혼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므로, 그의 영혼은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동시에 사탄을 두려워하며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거나 그분께 불순종하며 사는 사람은 이 땅에서는 평안히 살지 모르지만 마지막에는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마태오 복음 1029절에 나오는 참새는 예수님 당시에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흔하고 값이 나가지 않는 날짐승이다.

이 구절에서 참새 두 마리의 값으로 제시된 '한 닢'에 해당하는 '한 앗사리온'(assarion; a penny)은 당시 가장 가난한 계층이었던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한 데나리온(denarion)16분의 1에 불과한 돈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하찮은 날짐승조차도 당신 섭리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고 돌보시는 세심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1030절의 '머리카락'에 해당하는 '하이 트리케스 테스 케팔레스'(hai triches tes kephales; the hairs of your head)'는 앞절의 날짐승중의 참새처럼 사람의 신체의 일부분 중에서 '가장 흔하고 값어치 없는 것'인데, 이것을 다 '세어 두셨다'고 한다.


여기서 '세어 두셨다'에 해당하는 '에리트메메나이 에이신'(erithmemenai eisin; are nembered)'에리트 메메나이'(erithmemenai; nembered)는 분사 완료 수동형으로서 이미 세신 행동이 완료되었다는 뜻이다.

결국 이 구절은 무수히 많으며, 날마다 빠지고 새로 생겨 수효가 변하는 우리의 머리카락을 다 세실 만큼 전능하신 분이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당신이 지으신 인간을 세심하게 보살피며 사랑하신다는 뜻을 나타낸다.


복음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전하다가, 제자들이 비록 육신이 찢기고 상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당신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배후에 계시니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두려움은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의 조건에서 올 수 있지만, 하느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자상하고 세심하게 보살피시는 주 하느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에서 옴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그 한계와 영역 안에서 설치는 사탄과 그 하수인이 자아내는 헛된 두려움에 속아 넘어지지 말고, 삶의 어떤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주 하느님의 생명의 말씀을 신뢰하며, 인간 전존재의 생사대권을 가지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2020711일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우리 안에 하늘의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마태10,24-33)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스승, 주인이신 예수님을 베엘제불(마귀의 두목)이라 하니 제자들은 더한 소리도 들을 것이라는 것.

그러니 그런 헛된 억지소리를 겁내지마. 하시는 것.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 뱀의 유혹을 먹을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는 것.

하느님 말씀 속에 숨겨진 구원의 약속, 곧 십자가의 대속 그 피로 맺는 새 계약, 그 진리는 반듯이 용서로 드러날 것이고, 인간들의 계명속에 감추어진 그들의 속셈, 위선도 드러날 것이라는 말씀.


(히브4,12)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 그 속셈을 왜 드러내세요? 예수님의 십자가로 용서받게 하시려고요.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 예수님은 하늘의 진리를 땅의 수준으로 설명하실 수 밖에 없으셨던 것,

그 땅인 너희의 수준, 그 귀로 들은 십자가의 대속, 그 영혼을 살리시는 복음을 너희들의 지붕위에서 선포하라 하시는 것, 곧 인간들의 계명으로 지킨 인간의 의로움과 그 자신의 뜻을 위해 열심과 희생으로 지은 집(신앙)은 영혼을 구하지 못하는 구원의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그 의미의 자신을 부인하는 그 자신의 지붕을 밟고 선포하라 하시는 것.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 ‘둘은 하나라는 말씀인 것. 두 마리, 숫자 둘(2)은 선악의 그 둘을 뜻하는데 그러나 그것은 하나라는 것.

사람은 두 눈으로 한곳을 바라보고, 두 귀로 하나를 듣고, 두 콧구멍을 통해 한곳으로 숨을 들이 키고, 두 손으로 한 가지 일을 하고, 두발로 한곳으로 가고, 그리고 입만 하나를 주셨다. - 하나의 말을 하라는 것.

곧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의 계명, 그 둘이 아닌 선이 악을 덮어 용서로 생명을 주는 그 진리 하나로 말하라고 하시는 것. 사람 자체가 하늘의 진리를 설명하고 있는 것, 하느님께서 사람을 진리로 지으신 것.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의 제단에서 나오는 타는 숯, 곧 대속의 제물이 되어 죽으신 분의 영()~ 하나로 말하지 못한 내 입술을, 죄를 씻어 주지 않는가~


(이사6,6-7) 6 그러자 사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

7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예수님께서 내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구원(생명)의 진리이심을 안다고 증언하면 심판대에서 구원의 판결을 받을 것이다.


(묵시3,5) 승리하는(믿는) 사람은 이처럼 흰옷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명의 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이고, 내 아버지와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아멘.

 




수정 삭제 답변 스크랩 인쇄 목록

* 이 글과 관련된 글(이전글, 현재글, 다음글)
번호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추천
2341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 김종업 2020/07/13 3 0
2340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증언 (마태10,24-33) 김종업 2020/07/11 6 0
2339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아버지의 영 (마태10,... 김종업 2020/07/10 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