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 서울대교구 가톨릭정보 뉴스 메일 갤러리 자료실 게시판 클럽 UCC MY
지금 여기에
  시샵: 김종업  총회원: 16명  개설일: 2008/04/16  회원분류: 게스트 http://club.catholic.or.kr/dydtjdhktkfkd (Today 2 | Total 8,450) 
클럽가입신청하기
클럽 성경쓰기
여정(길) 
공지사항
성경
매일말씀묵상
주일복음강론
성경/교회자료
구약성경해설
구약외경
구약 공부,묵상
요한복음
요한묵시록
신약성경해설
신약 공부,묵상
신약 외경
성경속 상징들
성경 한마디
천국복음
사도신경
산상수훈
사랑의 향기 
성경비유
영상특강/강의
하늘보화/QA
도란도란
도표및 지도
교리방/기도문
십자가의길/묵주기도
소공동체
성지를 찿아서
성인성녀傳
성화/이콘
이방종교
앨범
천상의 노래 
성가:연중
성가/성심.봉헌,
성가/성체.대림*성탄
사순.부활.성령
참회위령성모성인축가
미사곡/국악성가
기도공동체성가
생활/복음성가
주보공지
삶의 자리 
좋은글
역사/뉴스
신비한세상
노래방
영화/동영상
웃음나라
게임
건강/생활상식
맛자랑
직거래장터
마스코트
창골방 
저장고
果房 /과방
종친회
작업실
사용자정의
환영합니다.
초대
메일
내정보
성경
회원
매일미사
환경
기도문
관리
성인

매일말씀묵상

수정 삭제 답변 목록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마태10,34─11,1)
작성자   김종업  회원정보 쪽지
작성일   2020-07-13 오전 4:51:08  번 호   2341 
조 회   4  추천수   0 


2020713일 월요일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마태10,3411,1)

   

1독서 <너희 자신을 씻어라. 내 눈앞에서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이사1,10-17)

10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11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12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14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15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17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화답송 시편 50(49),8-9.16ㄴㄷ-17.2123(23)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제사 때문에 너를 벌하지는 않으리라. 너의 번제야 언제나 내 앞에 있다. 나는 네 집의 수소도, 네 우리의 숫염소도 받지 않는다.

어찌하여 내 계명을 늘어놓으며, 내 계약을 너의 입에 담느냐? 너는 훈계를 싫어하고, 내 말을 뒷전으로 팽개치지 않느냐?

네가 이런 짓들 저질러도 잠자코 있었더니, 내가 너와 똑같은 줄 아는구나. 나는 너를 벌하리라. 너의 행실 네 눈앞에 펼쳐 놓으리라. 찬양 제물을 바치는 이는 나를 공경하리라.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복음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마태10,34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11,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이미지 자세히보기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독서 (이사1,10-17)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11)


고대 근동 지방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이 아무리 격렬하게 분노할지라도 제사만 드리면 얼마든지 달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어떤 삶을 살든 상관없이 지극한 정성이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제사, 곧 값 비싸고 가치있는 제물이 드려지는 제사를 통해 신의 분노를 달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범죄를 저지르고서 그것을 합리화시키고, 당신의 분노를 잠재우고, 그 눈을 가리고자 바치는 그러한 제사를 받지도 원치도 않으신다. 그분은 철저히 공의로우시며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당신의 성품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근면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며, 당신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치는 제사만을 합당한 것으로 받으시는 분이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제기한 질문에 대하여 당신이 스스로 대답하신다. 이 대답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무수한 제물이 하느님께 전혀 유익하지 않다는 것이다. 먼저 하느님께서는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 물렸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굳기름'에 해당하는 '헬레브'(heleb)는 제사를 드릴 때 동물의 뱃속 내장 부분에서 떼어내 불태워 드리는 지방 성분을 가리킨다(레위3,9). 제사드릴 때 다른 부분을 먹는 것을 허락되었지만, 피와 굳기름 만큼은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성별되었으며, 먹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다(레위3,17).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먹지 않고 모두 태워버리는 그 기름마저도 원치 않으셨다. 이는 다름아닌,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들의 마음과 삶, 제사가 도리어 하느님의 거룩한 성품과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었기 떄문이다.


한편, '살진 짐승'이란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릴 때 건강하고 품질이 좋은 짐승을 잡아 드렸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 시대 말기에 병든 것과 저는 것 등 값이 떨어지고 품질이 좋지 않은 것을 제물로 드렸던 것(말라1,8)에 비하여, 매우 많은 정성을 드린 제사가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의 완악한 마음과 삶이 그들의 값비싼 제물의 가치를 무용지물로, 아니 하느님 대전에 역겨운 것으로 비쳐지도록 만들고 말았다. 


또한 '나는 ~ 물렸다' 해당하는 '사밧티'(sabathi)의 원형 '사바으'(sabah)는 배부르게 먹어 완전히 만족한 상태를 말한다. 본문에서는 물릴 정도로 싫증난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무언가를 물릴 정도로 먹으면,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거북하고 그 자체가 혐오스럽고 역겨운 것이 된다.


거룩하신 하느님께서는 제사드리는 자들의 완악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드리는 굳기름을 받지도 않으셨을 뿐더러 도리어 혐오스럽고 역겨운 것으로 여기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나는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는 말씀으로 형식적 제사가 당신께 아무 유익이 없음 밝히신데 이어, 이제 '황소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고 보다 직접적인 말씀으로 형식적 제사의 무용성 밝힌다.


여기에서 '싫다'가 원문에서는 '기뻐하지 아니한다' 로 되어 있는데, '기뻐하다'에 해당하는 '하파쳇티'(haphatsethi)의 원형 '하페츠'(haphets)는 본래 관심있는 어떤 대상을 향해 몸을 기울히는 것을 의미한다이러한 의미에서 매우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의미가 파생되었는데, 여기서는 강한 의미의 부정어 '로'(lo)와 함께 쓰여, 주님은 이스라엘이 드리는 피에 관심도 기울이지 않으며, 기뻐하지도 않으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본래 제사를 명하는 율법의 기록에 의하면,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드리는 제사, 그리고 그중 피는 가장 거룩한 것으로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으로 묘사된다(민수18,17). 율법이 명하는 것과 똑같은  짐승, 살지고 좋은 제물을 잡아 바치는 피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주님의 반응이 다른 것은, 하느님께 제물을 잡아 바치는 그들 자신들의 손에 무죄한 희생자들, 약자들의 피가 묻어있었기 때문이다(이사1,15-17).


히브리 사회 뿐 아니라 고대 근동의 여러 나라들에서도 피는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이것은 피가 생명의 원천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명을 물러내는 속전의 개념으로 드리는 피는 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제물의 일부였다. 더욱이 이방 여러 종교들은 그들의 신들이 피에 굶주려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피를 제물로 드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이 피를 드린 것은 이방 사람들과 다른 이유 때문이었지만(레위17,11), 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만은 동일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처럼 소중한 제물이었던 피를 하느님께 드렸지만,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이는 그들이 그들의 하느님께 대한 바른 인식도, 그분께 대한 바른 삶도 갖추지 못한 채, 제물인 피에만 중요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즉 하느님을 올바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살지도 않으면서 피만 드리면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들의 이같은 행태는 그들 스스로 그들의 제사 자체를 허무한 것으로 전락시켜 버리고 만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성품과 뜻을 올바로 인식하지도 않고,그에 부합한 삶과도 거리가 먼 그들의 제사는, 그야말로 무능하고 무가치하고 헛된 이방신을 향한 제사나 다름이 없는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이미지 자세히보기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복음(마태10,34~11,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4)


마태오 복음 1034절에서 39절까지는 '제자들이 세상과 겪게 되는 갈등의 필연성 및 절대적 헌신'의 요청에 대해 다루고 있다.


원문에는 마태오 복음 1034절과 35절에는 과거 시제, 마태오 복음 1036절에서 38절까지는 현재 시제, 그리고 마태오 복음 1039절에는 미래 시제가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에 있어서는, 첫 단락은 복음으로 말미암은 피할 수 없는 세상과의 갈등 및 박해에 대해서, 둘째 단락은 제자로서 요구되는 절대적 헌신의 삶에 대해서, 세번째 단락은 자신의 목숨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함에 대해서 각각 다루고 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러한 점층법의 구조를 통해 마지막 단락의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수준의 헌신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즉 예수님의 제자로서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스승되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이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하고, 그외의 것들은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세상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영원한 생명의 도()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은 자만이 실천할 수 있는 높은 신앙의 경지이다.


여기서 '평화'에 해당하는 '에이레네'(eirene; peace)는 세상과의 타협을, 그리고 ''에 해당하는 '마카이라'(machaira; a sword)는 하나의 은유로서 세상의 모든 죄악과 불신앙에 대해서 복음을 들고 싸우는 적극적인 대처를 상징한다.

 

   

2020713일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을 위해서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

독서(이사1,10-17)

10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 하느님의 가르침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


11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부터 제사 행위가 잘못 되었다는 말씀이신 것.

제사 행위가 아니라 그 제사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한다는 말씀.


12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 그 제사 행위는 하느님의 뜻을 짓밟는 헛된 것이라는 말씀.


(히브10,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 하느님은 제사의 제물인 어린양의 희생, 그 하늘의 의로움으로 죄인들이 살아나는 곧 십자나무의 대속, 그 사랑을 깨달아 그 십자가로 죄를 용서받아 구원이 이르라고 주신 제사인데, 그 제사의 의미는 깨닫지 못하고 온갖 종교행위와 제사를 열심히 드리는 자신들의 선행으로 복 받겠다 하니~~


14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15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 대속의 죽음 그 사랑의 제사 그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와 찬양으로 예배(미사)를 드려야 할 것을~

그 감사와 찬양이 아닌 자신의 선행을 위한, 뜻을 위해 어린양을 계속 죽이는 그 제사를 드리는 그 제사의 피로 가득하니 어떻게 용서(치유), 구원이 이뤄지겠는가, 어떻게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겠는가?~

구원의 제사는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으로 완성하셨으니 더 이상 제사는 없는 것.(히브10,28참조)

제사의 제물은 우리가 준비하는 것도 아닌 것. 우리의 영심, 희생, 온갖 종교행위로 준비한 예물(제물)은 우리를 깨끗하게 할 수 없는 것(에페2,9참조)

제물은 어린양이신 예수님이시며 그 속죄의 제물은 하느님께서 준비하시는 것.


(창세3,21)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을 살리시기 위해 어린양의 가죽 옷을 준비하신 하느님, 가죽(오르)은 빛을 의미한다빛이신 예수님이시다(요한1,4)


(창세22,8)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하고 대답하였다. 둘은 계속 함께 걸어갔다.

= 이사악을 살리기 위해 번제물 어린양을 예비하신 하느님,

성경은 그 하느님을 사랑 의로움이라 하고, 그 구원의 사랑, 의로움은 하느님에게서만 있는 것(이사64,5 시편48,11참조)

그래서~

(로마3,25-26)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26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 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 ~! 당신의 의로움을 드러내세요? 우리의 창조 목적인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기에~(이사43,3)

십자가 대속의 죽음 그 사랑 의로움을 깨달아야, 받아야 하느님께 감사로 영광을 드릴 수 있는 것.


(에페1,5-6)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토브)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거저)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 믿는 것이 깨끗해지는 것이지요.


(히브10,12. 22) 12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 이미 완성된 제사를 계속해서 드린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악한 행실인 것.

그것은 십자가의 완성된 제사를 믿지 못하고 나의 열심을 더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다.


17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 하늘의 의로움을 배우고 깨달아 믿는 것, 그리고 하늘의 의로움을 전해주어 이웃이 죄에서 깨끗해 지도록 도와 주는 것. 그 모두가 선행(토브- 좋은일, 착한일)인 것이다.


(시편31,2) 주님, 제가 당신께 피신하니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의로움으로 저를 구하소서.


(시편48,11) 하느님, 당신 이름처럼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세상 끝까지 울려 퍼집니다. 당신의 오른손이 의로움으로 가득합니다.


(마태6,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아멘.


*오늘복음(마태10,3411,1)628일 묵상참조하세요 살롬 (-*^^*-)

 








수정 삭제 답변 스크랩 인쇄 목록

* 이 글과 관련된 글(이전글, 현재글, 다음글)
번호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추천
2342
[연중 제15주간 화요일]<심판 날에는>(... 김종업 2020/07/14 1 0
2341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 김종업 2020/07/13 4 0
2340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증언 (마태10,24-33) 김종업 2020/07/11 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