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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샵: 김종업로마노  총회원: 23명  개설일: 2008/04/16  회원분류: 게스트 http://club.catholic.or.kr/dydtjdhktkfkd (Today 2 | Total 1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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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부활 대축일] 보고 믿었다. (요한20,1-9)
작성자   김종업로마노  회원정보 쪽지
작성일   2024-03-31 오전 6:23:44  번 호   629 
조 회   3  추천수   0 

 

20240331일 일요일

[주님 부활 대축일] 보고 믿었다. (요한20,1-9)


주일이 한 주간의 절정이듯, 주님 부활 대축일은 전례주년의 절정을 이룬다. 죽음과 악의 세력을 이겨 내신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큰 기쁨이고 희망이며,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주님 부활 대축일은 하느님의 권능과 주님 부활의 은총에 감사드리는 날이다.

 

1독서<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셨습니다.>(사도10,34.37-43)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37 “여러분은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39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4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1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화답송>시편118,1-2.16-17.22-23(24)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이스라엘은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주님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셨다! 주님의 오른손이 위업을 이루셨다!” 나는 죽지 않으리라, 살아남으리라. 주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주님이 이루신 일, 우리 눈에는 놀랍기만 하네.

 

2독서<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3,1-4)

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1코린5,6-8)

6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7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부속가<오늘은 의무이고, 팔일 축제 동안에는 자유로이 할 수 있다.>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그리스도 죄인들을 아버지께 화해시켜 무죄하신 어린양이 양떼들을 구하셨네

죽음생명 싸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불사불멸 용사께서 다시살아 다스리네.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복음<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요한20,1-9)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 부활 대축일 제1독서 (사도10,34ㄱ.37ㄴ-43)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39ㄴ-40)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본문은 베드로가 이방인 백인 대장 코르넬리우스 집에서 예수님에 관하여 증언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예수님의 구속 사업의 절정인 십자가 죽음을 묘사하고 있다.

갈라디아 3장 1절에서 바오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 신명기 21장 23절을 인용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저주받은 몸이 되시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받은 자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9절의 '나무에 매달아'에 해당하는 '크레마산테스 에피 크쉴루'(kremasantes epi chsylu;hanged on a tree)도 신명기 21장 23절의 문장 형태와 유사하다.

 

"죽을 죄를 지어서 처형된 사람을 나무에 매달 경우, 그 주검을 밤새도록 나무에 매달아 두어서는 안된다. 반드시 그날로 묻어야 한다.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시는 땅을 부정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신명21,22-23)

 

베드로는 바오로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나무에 매달리심을 신명기 21장 23절과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신명기에 따르면, 사람이 범죄하여 처형당할 경우에 그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아 경계의 표본으로 삼았는데, 시체가 나무에 매달린 것은 그가 저주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을 말하면서 '십자가'라는 표현이 아닌 '나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저주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가 받은 저주는 장차 인간들이 당할 모든 저주에서 인간들을 건지는 대속적 저주였다.

베드로는 '나무'라는 단어를 통해 바로 이러한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 2장 24절,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에서도 예수님의 죽음을 '(십자)나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한편 '매달아'로 번역된 '크레마산테스'(kremasantes)는 '걸다', '~에 달려있다'를 의미하는 '크레만뉘미'(kremannymi)의 부정(不定) 과거 분사로서 '매단후에' 라는 뜻이다.

즉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무에 매단 이후에 죽였다는 사실이 이 부정 과거 분사형 단어에 나타나 있다.

 

유대인들은 범죄자를 처형할 때 돌로 쳐서 죽였다. 때로 그들은 형을 집행하여 이미 죽은 시체를 나무에 매달아 수치스러움과 저주 받았음을 나타내고,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범죄자를 산 채로 십자가에 매달아 형을 집행하였으며, 본문의 시제는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본문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로마인들에게 십자가 처형을 요구했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였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0)

 

사도행전 10장 40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결코 실패가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대한 언급이다.

 

원문의 뉘앙스를 가지고 번역하면, '하느님께서는 일으키셨다. 그리고 그분은 공공연히 보이도록 그를 내주셨다' 가 된다.

 

'일으키시어'에 해당하는 '에게이렌'(egeiren; raised up)은 '에게이로'(egeiro)의 부정(不定) 과거 3인칭 단수이다.

고전 희랍어에서 '에게이로'(egeiro)는 세가지 기본 개념으로 쓰였다. 첫째는 '깨우다', '자극시키다'이고, 둘째는 '일으켜 세우다', 셋째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다' 라는 의미이다.

본절에서는 세번째의 개념인 '죽은 자를 다시 살리다'는 의미로 쓰였다.

 

한편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로 번역된 '에도켄 아우톤 엠파네 게네스타이' (edoken auton emphane genesthai; caused him to be seen)에서 '엠파네'(emphane)는 '명백한', '보이는'을 뜻하는 형용사 '엠파네스' (emphanes)의 목적격이다.

이 단어는 '나타내다', '전시하다' 를 의미하는 '엠파니조'(emphanizo)와 관련되며 신약에 단 두번 나타난다. 본절은 의심할 바 없이 명백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였다는 뜻이다(로마10,20참조).

 

베드로 사도가 이러한 단어를 사용해서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부활 이후 그를 공공연히 나타나게 하셨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코르넬리우스 집안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는 이들이 이방인들이고,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갔다는 유대인들이 퍼뜨린 헛소문(마태28,13)을 들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 부활 대축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심을 기뻐하고 경축하는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에서, 

교회는 요한 복음사가가 전하는 부활 이야기, 

곧 빈 무덤 이야기를 선포합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요한을 비롯한 복음사가들이 모두 전하고 있는 

이 빈 무덤 이야기를 바탕으로 부활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습니다(1코린 15,3-5 참조).

빈 무덤 자체는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입증하는 증거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빈 무덤은 부활 사건에 대한 표징이자 증언입니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예수님께서 무덤에 누워 계셨다면 

부활에 대한 복음 선포는 가능하지도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무덤은 비어 있는 것입니다. 

빈 무덤의 발견은 부활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첫걸음이 되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40항 참조).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는 베드로에 이어서 무덤에 들어간 뒤에야 보고 믿었습니다(20,8 참조). 

그가 본 것은 예수님의 시신이 없는, 빈 무덤입니다. 

그러나 그는 빈 무덤을 보고, 이 징표를 통하여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 너머에 있는 실재, 곧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를 

부활의 초자연적이며 초월적인 신비 현상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믿은 ‘첫 번째’ 사람으로 증언합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절망과 죽음의 공간이었지만, 

그 무덤은 생명과 희망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더 이상 어둠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어둠과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셨기 때문입니다.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묻히셨던 그곳에서 예수님의 이야기는 새롭게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주님 부활 대축일]

 

죽음이 부활이다.

이날은 주님께서 만드신 날 우리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시편118,24)

 

(콜로2,20-3,4)

20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이 세상의 정령들에게서 벗어났으면서도, 어찌하여 아직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규정에 얽매여, 21 “손대지 마라, 맛보지 마라, 만지지 마라.” 합니까?

= 규정을 지키는 행위 신앙이다.

 

22 그 모든 것은 쓰고 나면 없어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규정으로, *인간의 법규와 가르침에 따른 것들일 뿐입니다.

= 행위 신앙은 헛된 것들이라는 것이다.

 

23 그런 것들은 자발적인 신심과 겸손과 육신의 고행을 내세워 지혜로운 것처럼 들리지만, 육신의 *욕망을 다스리는 데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 인간의 열심은 자신의 욕망(죄)을 다스리지 못해 죽는다. 그들을 살리시기 위해 예수께서 대신 죽으실 수밖에 없으셨다.

 

(야고1,15) 15 그리고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1요한2,15-17) 15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17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에페2,3-6) 3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3,1 그러므로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 오른 쪽에 앉으셨다 - 그리스도의 길이 ‘오른, 참 진리’ 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분의 뜻을 추구하라는 말씀이다. 위에 것, 예수님께서 그 위에 것을 위해 기도 하셨다.

 

(요한17,2-3.24) 2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24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죄인)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 생각하고(프로엔스 - 애정, 관심) 위에 계신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애정과 관심으로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골로2,16-19) 16 그러므로 먹거나 마시는 일로, 또는 축제나 초하룻날이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17 그런 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고 *실체는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18 거짓 겸손과 천사 숭배를 즐기는 자는 아무도 여러분을 실격시키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런 자는 자기가 본 환시에 빠진 나머지 *현세적 생각으로 까닭 없이 우쭐거립니다. 19 그는 자기의 머리이신 분께 단단히 붙어 있지 않습니다. 온몸은 이 머리로부터 관절과 인대를 통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잘 연결되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라는 것입니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

 

(로마7,4-6) 4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도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 덕분에 율법과 관련해서는 *죽음으로써, 다른 분 곧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분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위한 열매(뜻)를 맺게 되었습니다. 5 사실 전에 우리가 육에 갇혀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죄 많은 여러 욕정이 우리 지체 안에서 작용하여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하였습니다. 6 그러나 우리가 이제는,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율법과 관련해서는 죽음으로써 그것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하여 법전이라는 옛 방식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새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로마8,1-3)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그래서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아멘)

 

☨ 천주의 성령님! 나(죄)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고 나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음을 기억하게(깨닫게) 하소서. ~아멘.

 

 

 

 

 

 

예수 부활 대축일 복음 (요한20,1-9)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7)

 

여기서 '수건'으로 번역된 '수다리온'(sudarion)은 요한 복음11장 44절에서 라자로가 죽음에서 깨어나 무덤에서 나올 때 얼굴에 감싸인 채 있던 수건과 동일한 단어인 것을 볼 때, 장례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수의의 일부분이다.

 

예수님의 몸을 쌌던 아마포와 얼굴(머리)를 쌌던 수건은 약간 떨어진 동일한 위치에 있었다.

 

'아마포'(flax)에 해당하는 '오토니아'(othonia)는 '고운 베' 또는 '세마포'(linen) 라고도 하는 천으로서 이집트(1열왕10,28)나 시리아(에제27,16)로부터 수입되어 팔레스티나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만남의 천막 재료(탈출26,1)나 사제의 의복 재료(탈출28,5~8)로 사용되었다.

 

이 아마포는 눈처럼 흰색을 가지고 있어서 장례용 수의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요한복음 19장 40절에는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몸을 감싸는 데 사용한 천으로 나온다.

 

이것은 비싼 천이었으므로 만일에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면, 이 아마포도 당연히 가져갔을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 부활의 간접적 증거가 된다.

 

또한 '개켜져'로 번역된 '엔테튈리그메논'(entetylligmenon; wrapped; was folded up)의 원형 '엔튈릿소'(entyllisso)는 우리말 '개키다'가 갖는 '잘 포개접다'의 의미가 아니고, 둥그렇게 말려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즉 수건으로 머리와 턱을 동여맸던 상태 그대로 놓여 있던 것이다.

 

이런 정황을 근거로 볼 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면서 부활하신 몸이 신비스런 방법을 통해 수의나 머리를 감싼 수건으로부터 저절로 빠져 나온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수의를 입고 있는 상태에서 몸만 빠져 나간 것과 같은 모양이다.

 

그러니 만일에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면, 시신에서 아마포와 수건을 일일히 벗겨내거나, 벗겨냈다 할지라도 그것을 가지고 가지 않고 다시 개켜 놓은 뒤에 시신만 훔쳐 갔을리가 만무한 것이다.

 

교회는 이렇게 빈무덤 사화를 부활의 첫 메세지로 선포함으로써 역사의 예수님을 믿음의 그리스도, 생명의 주님,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로서 받아들이고 믿기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 부활 대축일

 

어제와 다른 오늘

김한수 토마스 신부

소풍을 나서는 가벼운 발걸음은 아니었습니다. 죽은 이를 마주 대해야 하는 무덤을 향한 길이었습니다.

그 길에서 마주 대해야 하는 현실에는 상실과 허탈, 절망과 슬픔이 끝없이 뒤엉켜 있었습니다. 절망의 길을 나섰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합니다.

무덤이 비었습니다. 당혹스러워 건넨 말이 주님 부활을 암시하는 첫 말이 되었습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2)

어제까지 일로 힘겹고 슬픔이 가득한 마음으로 나선 길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빈 무덤. 예수님의 장례를 지내고 안식일 다음 날 찾아간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복음서의 증언은 여러 사실과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유다이즘의 주간 첫날이 주님의 날이되어 교회와 세상 역사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유다 사회에서 증언의 유효성은 남성에게만 있었음에도 초기교회는 부활의 첫 증인(선포자)으로 마리아 막달레나를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부활에 반론이 제기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측면에서 당혹스럽지만, 교회는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제자들이 시신을 훔쳐 갔다:마태 28,11-15 참조; 정원지기가 그분을 다른 무덤으로 옮겼다:요한 20,15참조)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맞이한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증언은 분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사건입니다. 빈 무덤의 상황은 어떻게든 설명할 수 있고 이해 가능한 역사입니다.

수난에서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이어진 빈 무덤의 상황, 아니 그 이전에 말씀 선포자와 스승으로의 삶, 더 나아가 초라한 탄생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예수님 삶에서 신비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더라도 역사적 영역은 남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역사적 영역입니다. 예수님 생애에서 설명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영역은 여기까지입니다.

 

빈 무덤부터는 다릅니다. 여기부터는 믿음의 영역입니다.

빈 무덤부터 전개되는 이야기는 신앙의 영역으로 들어섭니다. 빈 무덤을 대하는 당혹스러움은 모두가 한결같지만, 그 반

응은 각자 다르게 이어집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빈 무덤에서 희망을 엿보았습니다. 설명할 수 없지만,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곳에서 믿음과 희망이 시작되었습니다. 빈 무덤을 마주 대한 순간 절망 가득한 어제까지의 현실이 기쁨과 희망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빈 무덤에서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의 시작이며 핵심인 주님 부활 신앙이 피어납니다.

 

오늘,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다시 오늘부터 기쁨과 희망으로 새로운 길을 나섭니다.

슬픔과 절망이 가득했던 어제의 발걸음이 오늘은 새로운 기쁨의 소식으로 가볍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빈 무덤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단지 무덤이 비었을 뿐’이라는 냉소를 넘어 오늘 마주하는 빈 무덤에서 그리스도인의 기쁨과 희망이 시작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20240331일 일요일

[주님 부활 대축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에 봉독된 복음은 세 사람의 믿음의 여정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이 여정은 보다라는 동사를 통하여 진행되는데,

우리말 성경에 동일하게 보다로 옮긴 낱말은 사실 그리스 말 성경 본문에는 서로 다른 세 개의 동사로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등장하는 동사는 블레포입니다.

단순히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시각적으로 보는 행위를 말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의 돌이 치워져 있는 것을 보고요한은 무덤 안에 아마포가 있는 것을 봅니다’.

그저 단순하게 어떤 장면을 본 것입니다.

두 번째 동사는 쎄오레오인데, 무엇인가를 유심히 바라보는 것’, ‘살펴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금 늦게 도착한 베드로는 무덤 안에 들어가 아마포와 수건이 놓여 있는 상태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앞뒤 상황을 고려하며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여겨보는 것입니다.

세 번째 동사는 호라오입니다. 베드로와, 뒤이어 무덤에 들어간 요한은 보고믿습니다.

이때의 은 단순히 시각적인 기능을 넘어서서 보이지 않는 것까지 믿고 이해하는 인식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세 개의 동사를 통하여

오늘 복음은 등장인물들이 처음에는 단순히 보는 것에서 시작하여

상황을 유심히 살펴보는단계로 발전하고,

마지막으로는 본 것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것까지 믿게 되는 은총에 다다름을 알려 줍니다.

보여 주시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 있는 것은 은총입니다.

보여 주어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빈 무덤과 부활의 연관성은 단순히 지적인 인식을 넘어서는 사랑과 신뢰의 으로만 제대로 체험되는 사건입니다.

빈 무덤이라는 예수님의 부재는 사실 어디에나 두루 계시는 편재의 시작임을 믿는 것,

빈 무덤이야말로 부활의 가장 분명하고도 명백한 증거가 되는 현장임을 고백하는 것,

이것이 바로 부활을 통하여 우리가 가지게 된 새로운 ’(시각)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주님 부활 대축일]

 

말씀을 하느님의 뜻으로 깨닫고 믿는 것이 부활

희미한 예감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구원이라는 것이다.

 

1독서 (사도1042-43)

42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죄인들의 생명의 빛,(요한1,4) 죄인들의 생명의 양식,(루가2,14) 곧 죄인들의 생명이시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 은총, 지혜, 힘, 진리이시다.(티토2,11 1코린1,24 요한1,16)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새롭고 샬아 있는 길인 새 계약, 계명이시다.(히브10,20 루가22,20)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로 그분과 함께 하느님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로마8,17) 이 모든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받는 용서라는 것이다. 믿는 여러분~~

 

2독서(콜로3,1-4)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 아래(땅, 육신)것을 위한 율법, 그 옛 계약의 신앙을 살지 말라는 말씀이다. 위, 영의 새 생명을 추구하는 그 진리(새 계약)의 신앙을 살라는 것이다.

 

(갈라5,16-18) 16 내 말은 이렇습니다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율법이 심판을 못한다는 말이다. (율법위 열성으로 받는 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의로움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 그 새 법으로 해방을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로마8,1-4 참조)

 

(마태6,31-33) 31 그러므로 너희는 (땅의 것)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땅의 것은 믿는 이나 믿지 않는 이나, 선인이나 악인이나 다 하느님의 일반 은총으로 받는다.(마태5,54 참조) 그러나 육의 소원, 의를 위한 제사와 윤리, 그 율법의 열심은 헛수고로 무거운 짐, 신앙이 될 뿐이다.

 

복음(요한20,1-10)

주간 첫날 이른 아침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 오늘은 다시 살아난 ‘라자로’의 모습과 비교(比較)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자 한다.

‘라자로의 무덤’ 입구에 돌이 놓여있었다. 예수님께서 “돌을 치워라”(요한11,39 참조) ‘라자로’는 돌을 스스로 치울 수 없었고, 예수님 부활 앞에는 돌이 치워져 있다. 예수님의 부활 앞에는 어떤 걸림돌들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곧 예수님께서 부활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요한11,25) 인간의 생각, 지혜로는 믿을 수 없는 부활의 모습이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 인간들의 생각의 한계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요한11,43-44) 43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라자로야이리 나와라.” 44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 예수님의 부활과 라자로의 살아남의 차이다. 신(神)의 부활(復活)과 피조물(被造物)의 차이다, 곧 예수님의 부활에는 인간의 수건, 아마포(수의)와 관계없다는 뜻이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지금까지의 모든 말씀을 깨닫지 못한, 곧 눈에 보이는 기적으로만 보고 믿었음이다. 그 보이는 대로 믿는 그 믿음은 허망(虛妄)하게 되어 옛 모습(계약,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게 한다.

 

10 그래서제자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 우리는 율법신앙(信仰)에 늘 머무르면,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깨닫게 되고, 그 진리(眞理)의 성령께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믿게 하심으로 모든 것에서 자유(自由)하게 된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1코린2,9-10) 9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 인간의 지혜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생각, 진리, 사랑이라는 것이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성령께서는 모든 것을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 성령을 통해서만 하느님의 깊으신 진리,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느님이 영(靈)이시며 그리스도인의 영(靈)이신 성령(聖靈)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성령의 이끄심을 받지 않는 이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한다.(로마8,9)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령을 문(門, 예수)을 두드려서 “찾아라. 구하라” 하신 것이다.(루가11,9-13 참조)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희미한 예감으로하는 신앙에서 벗어나 인간의 배신을 아픔으로 받아인간의 배신을 아픔으로 받아 주시는한없는 사랑의 아버지를 깨닫고 민게 하시니  감사합니다그것이 우리들의 부활이라 하시니 감사합니다오늘 깨달은 부활그 기쁨을 놓치자 않고 지키도록 하느님의 뜻(말씀안애 늘 머무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창조)아버지의뜻(새창조)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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