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속회원의 삶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입회하고 서약한 지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제가 재속회원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만난 한 형제님의 삶에서 복음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감화가 컸습니다. 그 외에도 잊히지 않는 몇 분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지원기에 교실 벽엔 장면 박사님의 사진이 걸려있었습니다. 초대 회원임을 처음 알았고, 정치적으로도 유명한 사람이 가난과 겸손을 추구하는 삶을 선택했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장발의 그림도 벽에 크게 걸려있었습니다. 그분들은 미국에서 서약하고 혜화동 성당에서 매월 재속회원의 삶을 교회 내에서 실천하고 확장해 나갔습니다.
백동 본당 오기선 신부님은 장면 형제와 만나 재속 프란치스코회에 관해 확실하게 알게 되어 처음으로 이광재 신부님과 함께 1937년 9월 20일, 재속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셨습니다.
장면 박사의 아들이신 고 장익 주교님은 본회에 큰 관심을 보이셨고 재속 프란치스코회 국가형제회와의 만남도 몇 차례 가지셨습니다.
갈색 수도복을 입은 젊은 수도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저렇게 기쁘게 살아가는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것을 뺏어간 사람에 대한 원망과 서운한 마음이 스스로를 무겁게 짓누를 때 프란치스칸 영성과 기도 안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산청 성심원에서의 나환자와의 만남, 애지람의 장애우 돌봄 등 곳곳에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봅니다.
생태 주보인 프란치스코 성인의 피조물 사랑을 노래한 ‘태양의 찬가’는 기후 위기 시대에 지구공동체 안에 인간의 위치를 겸허히 돌아보고 소비 미덕의 생활보다는 모든 피조물에 찬미를 드리도록 안내합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사정상 어렵게 집을 매도하려고 부동산을 통해 내놓았는데, 뜻밖에도 지방에 사는 회원이 보러 왔고 저는 친구와 기도하려 외출했습니다.
한데 바로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 같은 영성을 살아가는 사람이 우리 집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집안에 스며든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보이지 않는 끈이 있었던 것일까?
창세기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야훼이레인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만남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느꼈다고 할까요.
재속 프란치스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감사하고, 나누고, 용서하며, 평화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설레는 맘으로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보이지 않는 끈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습니다.
성인은 말년에 죄를 회개하느라 눈이 짓물렀다고 하는데 나는 과연 얼마나 회개하고 살고 있는지 부끄럽습니다.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2026/09/06 춘천교구주보에서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