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사(獄死)도 치명(致命)이다
고봉연 요셉 신부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침대에 누우면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집니다.
그 옛날, 옥에 갇힌 천주교 신자들의 삶은 어땠을까요?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사학죄인으로 감옥에 붙잡혀와 계속해서 문초와 형벌을 받았습니다.
볼기짝이 터져 나가고, 뼈가 바스러지기나 살을 뚫고 뛰어나옵니다. 정신을 잃고 초주검 되어 감옥 안으로 끌려오면 또다시 ‘용광로 속의 금처럼 시험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지혜 3,4) 시험을 이겨냈습니다.
요즘 중형 아파트의 기준은 25평으로, 국민 평형 아파트라고 부릅니다. 당시의 여자 감옥은 국민 평형보다 조금 큰 30평, 남자 감옥은 두 배인 50평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옥마다 200명 넘는 인원이 수용되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요한)은 목민심서에서 감옥생활의 다섯 가지 고통이라고 하여 옥중오고(獄中五苦)를 소개 하는데,
이것은 형틀의 고통, 토색질(갈취)을 당하는 고통, 질병의 고통, 춥고 배고픈 고통, 오래 갇혀 있는 고통입니다.
정약용은 ‘옥(獄)은 이승의 지옥’ 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입니다. 대역죄인으로 잡혀 온 천주교인들에게 옥중오고는 더 가혹했습니다.
페레올 주교님은 <1839년 기해박해 순교자들의 행적>에서 옥중 생활을 전해줍니다.
“감옥에는 창문이 전혀 없어서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못한다. 겨울에는 추위로, 여름에는 더위로 견딜 수가 없다. 바닥에는 거친 짚으로 엮은 멍석이 깔려 있다.
(좁은) 감방 안에 갇힌 신자들이 하도 많아서 다리를 뻗을 수조차 없다. 끔찍스러운 감방에서 당한 고통은 고문보다 훨씬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매 맞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와 고름에 젖은 멍석이 이내 썩어서 사방에 퍼진 악취로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들을 가장 가혹하게 괴롭힌 것은 굶주림이다. 온갖 고문을 견뎌냈던 사람들도 배고품 앞에서는 견디기 어려웠다.
주먹만한 (삶은)좁쌀을 하루에 두 번밖에 받지 못했기 때문에 (배가 너무 고파) 깔고 누워 있던 썩은 멍석을 뜯어 먹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감옥 안에 이, 벼룩, 빈대가 많았는데, (시장기를 달래려고) 그것들을 끔찍하게도 먹기까지 했다.”
페레올 주교님은 투옥된 신자들의 심정도 전해줍니다.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투옥된 신자들은 오로지 한 가지만 걱정하였는데 그것은 망나니의 칼에 목이 잘리는 날이 오기 전에 감옥에서 병사하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는 말씀대로 투옥된 신자들은 순교자가 되는 그날까지 옥중 생활을 버텨냈습니다.
옥고를 버티지 못하고 옥사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옥사(獄死)도 치명(致命)이다. 죽음을 넘어 하느님을 희망한 분이야말로 모두가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다.“
오늘은 자신을 온전히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한국순교자대축일입니다. 어제의 한국 순교자들이 오늘이 나의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2026/09/20 춘천교구주보에서 옮겨온 글